2015년 7월 17일 금요일

그 땅에 남겨두신 사람들

사사기 31 ~ 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열국은 블레셋 다섯 방백과 가나안 모든 사람과 시돈 사람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어구까지 레바논산에 거하는 히위 사람이라. 남겨 두신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 이스라엘 자손은 마침내 가나안 사람과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사이에 거하며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며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드디어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40 전에 그들은 애굽에 있었습니다. 애굽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2:23~25 을 보면 여러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준비된 지도자 모세를 사용하셔서, 열두가지 재앙을 내린 끝에 한명도 빠짐 없이 200만명에 가까운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발한 지역인 라암셋에서 가나안까지는 300km 되지 않는 거리입니다. 물론 블레셋을 피해가기 위해, 하나님은 800km 넘는 길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래봐야 30일이면 족히 거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라암셋을 출발한 지 30일째 되는 둘째달 십오일에 신광야에서 하나님께 원망을 합니다. 애굽을 출발할 때 가지고 나온 양식이 바닥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은 이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거리가 아무리 길어야 30일 거리라는 것을 알았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사십년을 끄셨을까요? 

신명기295절과 6절을 보면 주께서 사십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너희로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십년 동안 떡도 먹지 못하게, 포도주도 마시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방에 강한 적들을 두셨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주시고, 신과 옷이 헤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정말 터프한 시험을 하셨는데, 왜 사십년일까요 ? 누구도 정확하게 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다음에 짚어보려고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앞세워 가나안을 정복케 하시고 60세 이하의 선택된 자들과 함께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드디어 약속하신 땅, 가나안의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서도 적을 남겨두시어 시험을 하십니다이 시험은 광야에서의 시험, 죽고 사는 전쟁과 같은 시험은 아닙니다. 하지만 쉽게 생각해서는 안될 시험이라는 것을 깊이 새기셔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여정은 어떻습니까 ? 여러분은 과연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 아직 가나안으로 출발도 하지 못하고 애굽에 있어서, 힘든 노역을 하면서 재앙을 당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광야로 나와서 많은 적들과 전투를 치루며 긴여정을 걷고 있습니까? 아니면 전쟁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하나님이 남겨두신 소소한 시험들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가나안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기독교인 여러분 ! 지금 여러분의 주변에 있는 소소한 적들이 이전에 여러분이 겪으셨던 강한 적들보다 더 이기기 어려운 적이라는 것을 깨달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 이것을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이 땅에 우리가 온 거은 시험을 치루려고 온 것이고, 이 시험을 내고 지켜보시는 분이 완전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하게 깨닫는 것이 우리가 시험을 이기는,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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