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7일 화요일

종교가 없으신 분, 기독교에 회의를 느끼신 분을 위한 글 (2)


5. 세상과
내가 아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말과  연관 짓지 않더라도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모릅니다. 자신 아니라, 바로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모릅니다. 그리고 세상과 우주에 대해서도 모르죠. 성현들의 말씀은 우리가 이렇게 모른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내가 나에 대해서도 모른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자신의 목적을 이뤄가며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가장 살고 갔다고 인정할 만한 사람들 중에, 플라톤과 공자, 둘의  삶의 측면을 잠깐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시겠지만, 이들의 사상과 철학은 동서양 학문과 사상의 근간이 됩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인간이었을 겁니다. 자기들의 뛰어남을 가지고 이세상을 바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글을 보면 있듯이, 이들은 세상을, 세상의 모든 이치를 확실히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세상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한 같습니다. 창조주의 메카니즘을 잘못 이해했다고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이들은 생각해 봤었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가까운 부인과 자식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도 알기 어렵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세상을 다스릴 있다고  자신했던 같습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실패할 만큼 실패한 후에  말년에 깨달았습니다. 자신들의 뜻과 계획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아쉬움 가운데 생을 마감합니다. 이들의 삶이 그러한데, 누가 세상을 안다고 있을까요? 물론 저도 세상을 안다고 자신하지 못합니다. 잘모르기에 조심스럽게 추론해보고, 노력합니다. 이를 위해 시간을 쏟다 보면 마음 속에서 들려오는 다른 소리가 있습니다. " 알아서 뭐할건데? 시간에 나가서 좋은 하고, 잘살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낫지!"   말은 당연히 맞는 말이기 때문에, 생각을 멈추고 일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며 깨달아 나가는 것도 이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주가 없다면 인간이 얼마나 유한한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이 없어야 인간이 존중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 라고 생각합니다.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창조주가 운영하는 메카니즘이 없다면, 이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창조주가 정의와 공평으로 세상을 운영하기 때문에 세상은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세상만 존재한다면 우리는 완전한 정의와 공평을 보지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창조주의 정의와 공평이 없다면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서 무한 투쟁하는 전쟁과 같은 상태가 것입니다. 토마스 홉스는 이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 라고 표현했습니다. 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와 법이 만들어 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통제할 없는 부분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이를 위해 창조주가 부여한 것이 '양심' 입니다.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면 가책을 느끼고, 죄를 지으면 죄책감 속에 살게 됩니다. 창조주가 부여한 양심은 우리를 돌아보게 하고, 세상을 유지하는 기본적인 힘이 됩니다.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이세상은 인간들에 의해 운영됩니다. 인간에게는 이세상을 운영할 능력과 권리가 부여되었습니다. 물론 이세상을 아름답게 유지할 책임도 주어졌지만요. 창조주의 메카니즘은 완벽하지만, 우리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대해 불평하게 되고, 스스로를 아주 미약하고, 나약한 존재로 만들어 갑니다. 마음 먹기에 따라, 자기 하기에 따라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세상을 움직이는 중요한 존재가 있습니다. 인간은 창조주가 원하는 것을 발견할 있는 존재이고, 그것을 발견하고 방향대로 경우에 창조주의 힘을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인간을 중시해서 종교를 거부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종교는 인간을 수동적인 臣民 되게 하지 않습니다. 석가모니가 강조하듯이 인간을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게 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자기의 세상을 스스로가 만들어 있는 것이 창조주가 만든 인간입니다.

창조주를 알지 못한다면, 이세상은 우연히 만들어졌고, 인간도 우연히 만들어졌고, 우연히 태어나서, 우연히 죽어갈 겁니다. 존재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십억 인구 중에 하나, 그저 숫자일 있습니다. 지구상에는 지금도 기아로 5 이하의 어린이만 해도 하루에 14,000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가까운 동남아시아에는 쓰나미로 수천명, 수만명의 사람이 죽습니다. WHO 통계에 따르면 하루에 교통사고로 하루에 4,000명이 죽고,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이 됩니다. 우연히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이유도 모르고 살다가, 우연히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면, 우리의 삶은 정말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1980 대에 한국에서 버스가 강으로 추락해서 승객 50 정도가 죽은 사고가 있었는데, 한분이 사셨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기억에는 유일씨 입니다. 강에서 유일하게 살아났다. 그래서 잊혀지지 않는 합니다. 80년대 중반에 인도네시아에 강력한 쓰나미가 있었는데, 섬들을 덮쳐서 10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한번의 쓰나미로 십만명 이상이 몰살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하나님은 이러실까? 인간의 생명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저는 섬의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쓰나미가 완전히 휩쓸고 지역에서도 절반 이상이 살아남은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이렇게 아무도 모르지만 어떤 사람이 죽고, 어떤 사람이 사는 것이 우연은 아닙니다.

사람이 죽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죽음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거의 모든 죽음은 자신이 선택하고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을 지키려고 노력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운전을 조심해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삶의 마지막 까지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 사람과 포기한 사람, 자기의 삶을 아낌 없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 제가 운전을 하도 급하게 하고 다니니까, 친한 선배가 제게 "너처럼 운전을 레이싱 하듯이 사람을 아는데, 중에서 명이 죽었고, 너만 살아있어." 라고 말하더군요. 별로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출근하는 제게 와이프가  "당신은 절대로 운전하다가 죽으면 안돼. 남들이 전부 '까불더니 죽을 알았어' 라고 할거야!" 라고 하는 말을 듣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후로도 급하게 운전을 하긴 하지만, 훨씬 조심하고 있고, 자주 운전으로 내가 죽을 수도 있다고 저를 긴장하게 합니다.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사고 없이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목숨까지도 양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곤 합니다. 모든 죽음은 이유가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물론이고, 죽음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게도. 죽음이 있으면, 몇몇 사람들은 죽음이 자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잘못했기 때문에 네가 죽었다고 하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생명을 건진 사람은 대부분이 깊이 감사하며, 이전 보다 가치있게 살아가려 애쓸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며 교훈을 얻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죽음을 본받으려 각오를 새로이 것입니다. 명이 한꺼번에 죽더라도, 만가지 각기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재수가 없어서, 우연히 만들어지는 죽음은 없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가치를 찾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설명해 보고 싶습니다. 이세상에는  인간이 모든 일을 결정해야 하고, 자신이 것만이, 자신이 아는 것만이 이세상이라고 생각하는 극단적인 자존감을 가지신 분들이 계십니다. 자신의 삶이 얼마나 가치가 없는지,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참으로 다양한 분들이 계십니다. 극단의 사이에서 우리는 자기의 존재감과 가치를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힘이 사람이 존재감이 있었을 수도 있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시절에는 머리 좋은 사람이 존재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 사람이 존재감이 있었고, 나이 들어서는 자식을 사람이 존재감이 있을 겁니다. 돈이 많은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은  존재감이 있었겠죠. 그런데 이런 것들이 만들어 자존감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세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사람을 만나서 망신당하게 마련이고, 머리 좋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자기와 비교도 안되는 뛰어난 사람을 만나 좌절하게 됩니다. 돈으로 자랑하려는 사람은 자기 보다 돈이 많은 사람을 만나면 수치심을 느끼게 겁니다. 이렇게 망신을 당하고, 수치심을 느낌으로 정신을 차리면 좋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짓을 하기도 합니다.  불의한 , 부정한 , 비열한 짓을 해서라도 수치를 극복하고 목적을 이루려 합니다. 얼굴이 잘생겼다거나, 몸매가 좋다거나 것도 자존감을 높여줄 있지만, 이런 것들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렇게 오래 가지 못하는 것들에 의존하여 자신을 평가합니다. 이런 것들은 보통 후회를 낳게 되는데, 중에서도 돈과 권력에 의존하는 경우는 거의 파멸에 이르는 결과를 낳습니다. 보통 돈과 권력에는 사로잡힌다고 표현합니다. 헤어나오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혹시 살아있는 중에 파멸을 맞으면 그나마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저세상에서 당할 처벌은 아무리 후회해도 모자랄 만큼 엄중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세상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없겠죠. 이세상을 살면서 이런 유한한 것들에 의존하면 할수록 우리는 한계를 느끼는 존재가 됩니다.

이세상에서 인간은 순간 창조주께 의존하며 그의 섭리와 보호 속에 살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신의 섭리 없이 세상을 이해하려고  애써보았지만 결과를 보면 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창조주가 세상 돌아가는 일과, 우리 삶의 일거수 일투족에 간섭하겠습니까? 선인과 악인에 대해 이세상 삶이 끝난 후에 아주 공정하게 이루어질 것인데, 창조주가 이세상 삶의 중간에 간섭하는 이유는 창조주의 뜻을 이해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의 의지와 행동에 힘을 주려는 것입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지만,  배를 저어서 바다로 나아가는 것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바다를 항해하려면, 처음 낮은 바다에서는 파도가 쪽으로 치기 때문에 바다 쪽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파도들을 헤치고 어느 정도 깊은 바다까지 나아가면  그때부터는 물살이 먼바다로 향하기 때문에 물살의 도움으로 편하게 나아갈 있습니다. 우리가 이세상에서 선하게 살고자 하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과 반대로 가는 같이 시련과 방해가 따릅니다. 하지만 이를 견디고 어느 정도까지 나아가면 그때부터는 창조주의 메카니즘에 따라 평안하면서도 보람있는 항해를 있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창조주의  간섭을 받아가며, 이를 활용하며 살아야 겠습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똑똑하고 능력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못할 확률이 녹고, 이에 따라 창조주를 인지하지 못하고 끝까지 힘든 삶을 살다 가기 쉽다는 겁니다.

이세상은 완전하게 창조되었고, 지금도 완벽하게 운영되고 있는데, 이것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 뿐입니다. 인간은 창조의 매카니즘 속에서 상상도 하지 못하는 역할을 있습니다. 인간은 이세상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장장 팔십년 동안 방영되는 대하 드라마의 주연을 맡겨놨더니, 드라마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도 모르고, 자기가  엑스트라인 알고 불평하며 루저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 바로 현실 속의 우리들 입니다. 드라마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이세상의 삶을 선택하면서 우리는 완벽한 시나리오를 썼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시나리오를 잃어버린 채로 드라마를 시작합니다. 이세상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우리는 잃어버린 시나리오를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찾을 있을까요?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릴까요? 잃어버린 시나리오를 찾는 방법은 확실합니다. 기억을 더듬으며 열심히 노력하는 겁니다. 확실하게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는 주인공이라는 자존감을 잃지 말고, 비숫한 연기를 하면서 나아가는 겁니다. 대본 보다 좋은 애드립을 하면서 말입니다. 자신의 시나리오를 찾지 못했다고 하여, 연기를 하지 않고 시나리오를 찾기 만을 기다린다면 그는 주인공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20년을 주인공인 알고 살다가, 나이 들어가면서 존재감을 잃고 엑스트라로 살아가는 분도 계실 것이고,  60년을 주연으로 살다가 마지막 20년을 엑스트라로 끝내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반대로  79년을 엑스트라로 살다가 마지막 1 기간에 주인공 자리를 박수를 받으며 인생을 마치실 분도 계실 겁니다. 창조주가 운영하는 이세상의 주인공은 사람, 바로 우리 자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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