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7일 화요일

종교가 없으신 분, 기독교에 회의를 느끼신 분을 위한 글 (1)

오랜 만에 긴 글을 써봤습니다. 한꺼번에 올릴 수 없어서 나눠 올립니다. 이글을 통해 단 몇분이라도 하나님을 만나시길 소망하며...


1. 글을 시작하면서

저는 부족한 글을 통해서 분이라도 자신에 대해 깊이 살펴보게 되시길 바랍니다. 이세상에서 여러분의 남은 삶이 보다 성공적인 삶으로 변화되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적습니다.

7년전 어느 , 친한 장로님  분이 제게 양로원에서 함께 봉사해보지 않겠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양로원 노인 분들의 예배를 돕는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연세가 있으신 목사님을 모시고 봉사를 하는데, 어쩌다 보니 저는 목회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양로원 예배에서 6년 째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양로원 예배의 설교는 두가지의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어느 수준에 타겟을 맞춰야 할까? 입니다. 한 오십분 정도가 예배를 드리는데, 그 중에는 기독교를 전혀 모르는 분도 계시고, 치매로 고생하시는 분도 30~40% 정도는 되셨습니다. 또 은퇴하신 목사님도 계시고, 장로님들도 많이 계시고, 대부분이 권사님들이십니다. 처음 몇 주는 아동부에서 설교하는 것 처럼 해보기도 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제 설교를 듣는 분들이 하실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곳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전부일 것인데... 하는 마음에 설교 내용이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분들께 좋은 말씀이 무엇일까 6개월 정도를 고민 가운데 설교를 했고, 그 이후부터는 편안해 졌습니다. 오히려 이분들이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분들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것이 많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이와 환경에 제한되지 않는 도전적이고 강력한 메세지도 전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데, 어느 날 보호자 한 분이 제게, 종교가 없는 분들이 꽤 계신데. 이분들이 신앙을 가지고,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없겠냐고 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종교가 없으시거나, 기독교에 회의나 반감을 가지신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혹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데에 문제가 없으신 분이시라면, 이 글을 읽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2.  나는 누구인가?

고등학교2학년 어느 꿈을 꾸었습니다. 속에서 내가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열심히 시골 길을 걷고 있었고, 그런 나를 공중에서 내가 보고 있었습니다. 어딜 저렇게 열심히 가나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춰 서는 것이었습니다. " 섰지?" 생각하는 순간에 갑자기 돌아서서 나를 쳐다보며 "네가 나잖아!" 라고 말하는 겁니다. 저는 깜짝 놀라며 꿈을 깼습니다. 열심히 걷고 있는 나와 공중에서 이를 쳐다보고 있는 중에서 과연 누가 나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길을 걷고 있는 내가 왠지 갑갑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것에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교회에서 고둥학생들을 가르치다가  교재에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제목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성경 교재에서 가끔 나오는 질문이었지만, 구체적으로 자신의 답을 찾으려고 노력해 보지 않았었는데,  왠지 때는 신경이 쓰여서 아이들과 시간을 가지고 토론을 했었습니다. 그때 교재가 주는 답은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였습니다. 어떤 아이가 사도 바울이 안에 선한 나와 악한 내가 매일 싸운다 라는 성경구절을 펴보이며, 그러면  착한 나는 천국에 가고 악한 나는 지옥에 가면 되겠네요? 라고 물었을 ,  " 수도 있지만, 내가 아닐 수도 있지." 라고 얼떨결에 대답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해보게 그렇게 대답을 했을까?   

"무엇이 진짜 나인가?" 복잡했습니다. 몸이 나라는 것은 분명한데,  그러면 생각, 마음, 정신, 본능, 욕망 같은 것들은 무엇인지? 복잡한 동양철학의 표현으로 말하면, , , , ,, , ...  이런 것들은 무엇인가? 혼이 육체를 떠나는 유체이탈 상태에서는 몸은 그냥 껍데기에 불과하던데, 그러면 가장 중요한 나는 육체가 아닌 혼인가? 영혼 이란 것은 영과 혼이 결합된 단어인데, 그러면 혼은 나인데, 영은 내가 아닌가? 영은 내가 아니라면 결국 나는 혼과 육체가 결합된 것인가? 이런 여러 생각이 가능했습니다.

오랜 생각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세상에서의 나는 , 그리고 혼과 결합되어 있는 , 육신 그리고 육신에 결합되어 있는 ()  결합체라는 것입니다. 이세상에서 몸에 영과 혼과 백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입니다. 이세상을 떠나게 때는 육신과 분리된 영과 혼이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나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참고로 나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이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백은 "눈도 아프고, 피곤하니 그만 쉬어야 한다" 합니다. 영은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이니 최선을 다해보자" 합니다. 혼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성적 욕구가 일어납니다. 백은 "어떻게 하든 욕구를 풀어야 한다" 합니다. 영은 "참아야 한다" 합니다. 혼은 결정을 해야 합니다. 여러 사람이 같이 식사를 경우에 백은 "맛있는 서둘러서 가져다가 많이 먹자" 합니다. 영은 "남을 배려 하면서 적당히 먹자" 합니다. 혼은 결정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육체와 백은 이세상에 국한되어 존재하기 때문에 저세상을 대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과 혼은 저세상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입장이 다릅니다. 따라서 혼은 육체를 훈련시켜야 합니다.

3. 나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나는 부모님의 생물적 결합의 산물인가?"  아버지의 수많은 정자 가운데 하나가 어머니의 난자와 결합하여 생명이 잉태된다는데, 생명이 잉태된 순간부터 내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자도 생명력이 있는 것이니, 정자부터 내가 존재하는 것일까? 정자가 나라는 것은 끔찍한 일이니 접어두고, 임신한 순간의 손톱 보다 작은 생명체가 나라고 생각해도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엄마의 뱃속으로부터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이 나의 삶의 시작이라고 봐야 것인가? 사실   속에서 나오기 전과 나온 후의 차이는 숨을 쉰다는 뿐입니다. 그러면 호흡을 하는 순간부터 바로 사람이 되는 것이고, 내가 만들어진다고 봐야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생명을 '목숨'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숨을 쉬면서 생명이 시작된다고 것입니다. 숨을 시작되는 순간부터 사람이고, 숨이 끝나면 사람이 아닌 시신이 됩니다.

동양철학에서는 사주를 중요시 합니다. 사주에 따라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사주란 결국 이세상에 나와 호흡을 시작하는 순간의 ,,, 시를 말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를 인정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서 호흡을 하는 순간에 바로 내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고 봐도 좋겠습니다. 엄마의 뱃속에서 나와 호흡을 하는 순간에 무엇인가 육체 안에 들어와 합쳐진다고 봐야 합니다. , 호흡을 하는 순간에 육체에 혼이 접합된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뱃속의 태아도 생각을 한다고 주장하고, 이에 대한 실험결과를 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태아에게 생각이 있거나, 혼이 들어있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태아를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그것은 무엇일까요? 육체가 만들어 지면서 육체에 속해있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어떤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통 본능이라고 부릅니다. 육감을 가졌고, 욕구를 가졌습니다. 배고프면 먹으라고 하고, 졸리면 자라고 하고, 호르몬이 분비되면 성적욕구를 참지 못하게도 합니다. 겁을 먹고 긴장하기도 합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육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 이 바로 이것입니다. 엄마 뱃속의 태아는 이 본능을 가지고 있기에 평안하기도 하고, 긴장하기도 합니다. 정자도 살아있고, 난자도 살아있지만 생명체는 아니고, 뱃속의 태아도 살아있지만 사람은 아닙니다.

나는 부모님의 결합의 산물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부모님의 결합으로 인해 만들어진 육체에, 세상에 나오면서 부여된 혼이 결합된 존재입니다. 혼이 어떤 방법으로 육체에 결합되는 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저는 저만의 주장을 하려 합니다. 물론 정확히 알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렇게 되야 창조주의 메카니즘이 완전할 것이다 라는 관점에서 추론해 본 것입니다. 한번 같이 생각해 보시죠! 혼과 육체가 어떻게 매치가 될까요? 다음의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연히'  둘째는 '창조주의 일방적 결정으로'  셋째는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이해할 수 있는 메카니즘에  의해서'  넷째는 '혼이 스스로 선택해서'  등이 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이 중에서 '우연히' 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정하는 편이고, '혼이 스스로 선택해서' 에 가장 높은 가능성을 둡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면 창조주의 원칙에 따라 여러 개의 선택 가능한 대상이 주어지고, 이 중에서  혼으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세번째와 네번째가 혼합된 형태라고 하겠습니다. 혼은 어떤 곳(?)을 선택해야 이번 세상의 삶을 가장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까를 고려해서 자신의 삶을 선택합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어떤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는가 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었으므로, 내 삶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내 자리를 내가 선택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자기의 처지를 불평하지 않게 되고, 자신이 처한 여건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면 뭐든 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4.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삶에서 지금 나는 어느 지점에 있는가?

"나는 누구인지?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대해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시간을 살아왔습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 모르고도 잘살아왔고, 문제가 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열심히 생각해 봤자 알게 되지는 못할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 조차 해보지 않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생각했습니다. 다행스럽게 나름 대로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에 대해서 답을 찾았습니다. 물론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니고, 검증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편할 대로의 답을 찾은 것일 겁니다.우리는 이세상에 왔다가 저세상으로 갑니다. 우리는 누군가 죽으면 "돌아가셨다" 라고 합니다.  왔던 곳으로 간다는 것이죠. 기독교에서도 이세상을 순례자의 길이라고 표현하고 본향으로 간다고 합니다. 본향에서 왔다가 본향으로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세상 삶은 어디에선가 왔다가 어디로 다시 돌아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세상에 태어나면서 만들어졌다가, 죽는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부터 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왔다가 다시 돌아간다고 하면, 왔는지, 그리고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단순한 답을 생각하면서 저는 나름대로 내가 이세상에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나는 언제 죽게 될까? 갑자기 사고로 삶을 마치지는 않을까? 병으로 삶을 마치지는 않을까?" 하는 문과 두려움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수명이란 것이 내가 조심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건강은 얼마나 버텨줄까? 나도 치매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자기가 생각한 대로 죽는 사람 보다는, 뜻하지 않게 죽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을 겁니다. 삶이 얼마나 남았을까? 언제 죽을 모르니까 놀자! 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고, 언제 죽을 모르니, 내가 도리를  최선을 다해서 하고, 좋은 많이 하다 가자 ! 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를 따지지 않고, 이세상에서 어떻게 것인가만 생각해  보더라도, 아무리 생각해도 저세상은 있어야 같습니다. 저세상이 없이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면 이는 너무도 불공평하고, 너무도 가치 없고, 무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세상에서 선하게 열심히 사람과, 나쁜 짓하고 남을 속이고, 괴롭혀서 편하게 사람이 후에 뭔가 보상이나 처벌이 없이 그냥 끝나버린다면 이것은 너무 불공평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세상과 심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의 결과에 따라 분명히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완벽한 심판관' 입니다. 심판관이 정확하지 못하거나,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조주가 없다면 완벽한 심판관은 있을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창조주는 우리가 사는 이세상을 제공해 아니라, 이세상 이후에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억울한 , 이해하지 못할 것이 있었습니다. 이세상에서 기회가 한번만 주어진다면, 그래서 한번의 심판으로 영원히 처벌을 받으며 살아간다면 그것도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둘째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서 25시간을 살다가 갔습니다. 아이는 저세상에서 어떤 심판을 받을까요? 수많은 갓난 아이들이 죽어갔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하루, 아니 자신의 의지대로 한순간도 살아보지 못하고 삶으로 심판을 받아 영원히 심판대로 저세상에서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 영혼이 육체와 관계 없이 영원히 존재한다면, 한번의 이세상 , 한번의 시험으로 모든 것이 영원히 결정된다면 이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그래서 창조주는 윤회라는 방식으로 세상을 운영하실 같습니다. 아니 이미 많은 분들이 세상이 윤회한다고 알고 계십니다. 그리스 사상,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 천도교, 원불교 기독교와 회교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고등종교가 윤회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물론 기독교와 회교도 중에도 윤회에 대해 인정하는 교파들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윤회' 대해 간단히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사람이 이세상에서 평생을 살고, 죽으면 저세상으로 돌아가 심판을 받아서 판결에 따라 이백 정도 살게 됩니다. 심판의 결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세상의 삶을 바르게 살지 못했을 것이기에, 힘들고 불편한 저세상 삶을 부여받게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대부분이 뼈저리게 후회할 겁니다.   ,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조금만 좋은 했으면 내가 훨씬 편한 삶을 살텐데 !!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절히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기를 희망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기회가 주어지면 기대를 가지고 이세상에  다시 오게 겁니다.

하지만 이세상에 오면, 우리는 모든 것을 망각한 체로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어떻게 왔는지? 왔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렴풋이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유한한 육체와, 나약한 의지를 가지고는 뜻한 바대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성공적인 삶을 살다가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창조주의 메카니즘 입니다. 땅에서 생로병사를 겪게 되고, 수많은 어려움과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저 적당히 산다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뭔가 깨닫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많은 시련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인생은 고해의 바다" 라고 표현합니다. 이세상에 왔는 지를 깨달아도 인생은 여전히 고해의 바다 겠지만, 그래도 목적지를 알고 항해를 하는 것이 풍랑을 헤치는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이세상에서 나쁜 일을 일삼으려 살았기 때문에, 저세상에서 지극히 자유가 제한된 지옥 같은 삶을 사시는 분들이야, 최대한 빨리 이세상에 다시 가서 기회를 잡고 싶겠지만, 차례의 삶을 거치면서 비교적 성공적으로 사셔서 저세상에서 어느 정도의 자유를 누리고 사시는 분들은 이세상에 다시 가기를 꺼려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열반' 이나 '영생' 으로 표현되는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는 영원하고 완전한 자유' 얻을 때까지는 누구도 거부할 없는 것이 이세상 삶이기도 합니다. 이세상에 내려오기를 꺼려하시는 분들 정도의 수준이라면 이번 세상에 내려가면 반드시  '영생' 또는 '열반' 얻으려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분들의 이세상 삶은 조금은 다를 같기도 합니다. 엘리야의 환생인 세례 요한이나, 불교를 만든 석가모니의 등이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 주변에 모여 영생 또는 열반을 추구하는 분들의 삶도 조금은 다를 것입니다.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영생' 간절하지 않고, 다만 '창조주가 기뻐하실 일을 조금이라도 해서 저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를 누려보자 하는 정도의 수준에 있으니, 삶의 전체 과정에서 저는 영생과는 아직 거리가 있음이 확실합니다. 어쨌든 저는 세상이 '윤회' 돌아가야  공정하고 완전해지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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