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7일 화요일

종교가 없으신 분, 기독교에 회의를 느끼신 분을 위한 글 (5)


8. 나는 무엇을 위해 이세상에 왔는가?

가장 정확한 답은 '영생을 얻기 위해 이세상에 왔다' 입니다. 하지만 영생에 이르기는 너무 어려운 것이어서, 저세상에서 좀더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해 이세상에 왔다고 해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야 직접적인 답은 나는 무엇을 함으로써  목표를 이룰 있을까 일겁니다. 풀어서  말하면, 나는 자리에 이런 두뇌와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을까? 입니다. 저세상에서 이세상의 삶을 선택할 때는 창조주의 메카니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상태에서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 알고 것이기에, 자리에 이유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이것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평생을 씨름해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발견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냥 불평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이번 생을 마칠까요? 생각해 보면 그것은 가장 어리석은 선택일 겁니다. 어느 길이 맞는 길일까? 만약 길이 아니고 길이라면 나는 실패할텐데 ? 인생을 놓고 하는 선택 앞에 과감할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창조주는 말합니다. "결과는 인간의 책임이 아니다!" 우리들 인생의 평가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의 두가지를 대상으로 합니다. 의도만 바르다면, 선택에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달려가면서 혹시 하는 마음에 뒤돌아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이 창조주와 함께 있는 인간입니다. 만약 결과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일 겁니다.

글을 읽으실 대부분의 분들은 이미 이세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신 분이실 겁니다. 많은 선택을 했고, 많은 좌절을 경험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번의 성공을 했던, 번의 실패를 했던 얼마나 화려한 과거, 자랑스런 과거를 가졌던 인생을 마감함에 있어선 그다지 차이가 없어져 감을 느끼실 있을 겁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남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점수를 따고 가느냐 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앞에는 가능한 선택이 놓여져 있습니다. 돈을 못벌고, 돈과 관계 없는 삶을 살면서, 돈으로 남을 구제하는 방법을 택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짓일 겁니다. 지혜가 부족하고, 말재주가 없으면서 남을 깨우쳐주는 방법을 택한다면 그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힘이 없으면서 힘쓰는 일로 남을 도우려고 하는 것도, 시간이 없으면서 시간을 내서 남을 도우려는 것도 미련한 선택일 겁니다. 지금 내게 있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써야 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있을까요?


9. 기독교를 통해서

저는 기독교를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났고, 섬겼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글은 정통 기독교인의 글과는 아주 거리가 글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냥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가운데에도 이렇게 생각의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섬기고,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노력했고,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에 깊이 감사하지만, 기독교가 가진 기본 교리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을 부정합니다.

제가 부정하는 것들은 이런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이 썼다고 하는 것을 부정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고, 편집되었고, 번역되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감동이 들어있지만, 저자의 인간적인 한계가 드러나 있습니다. 물론 편집한 사람들과 번역한 사람들의 한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성경을 쓰셨다면 이렇게 쓰시지 않았겠죠? 그리고 하나님이 직접 성경을 쓰신다면, 그것은 '우리의 의지로 판단해서 살게 하시는'  그분의 메카니즘에도 맞지 않습니다. 혹시 글을 읽으시는 분이 성경에 대해 저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가 마음이 상해서 교회를 멀리 하셨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무엇인가에 미혹된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부터 다닌 감리교회는 달에 한번 주일 예배시간에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리적선언' 함께 외웁니다. 교리적 선언 5항에는 "우리는 구약과 신약에 있는 하나님 말씀이 신앙과 실행에 충분한 표준이 됨을 믿으며" 라고 명확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말씀이 들어있다는 , 이것은 성경을 하나님이 직접 쓰셨다는 것도, 성경 자체가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에 쓰여있는 하나님 말씀, 그것으로 우리는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의 모순을 지적하는 분들과 "성경에 보면 성경이 완전한 책이라고 되어 있으므로 성경은 완전하다." 라고 주장하며 논쟁하지 않습니다. 저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고, 저자들이 받은 감동과 교훈을 가슴 깊이 새깁니다. 저는 성경을 사랑합니다.

저는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을 하나님이 멀리하셨다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들과 같이 선악을 알게 인간' 바탕으로 하나님은 세상을 운영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은 우리의 원죄를 위함이 아니고, 인류가 자신이 지은 죄에 사로잡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이세상에서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함에 대한 구원이라고 믿습니다. 은혜에 대한 감사와 사랑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억도 안나고 느낌도 없는 원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주장' 동의하지 않습니다. 원죄 용서 받았다고  짓지 않고 잘살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니, 모든 죄를 사하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앞으로 짓지 않고 살기에 노력하지 않고, 최대한 양보하며, 선한 행하기에 노력합니다.

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몸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고, 지금도 만물을 주관하고 운영하십니다. 그의 아들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이세상에 오셔서 사랑으로 병자를 고치시고, 가르치시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신 구세주 이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의 삶을 온전히 하도록 우리를 도우시게 사람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런데 셋이 몸이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고, 구세주  예수님께 감사하며 섬깁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세상과 저의 한계를 극복해 나갑니다. 나를 도우시려 안에서 수시로 말씀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이외에도 제가 동의하지 않는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앞에서 것만 가지고도 저는 이단 이고,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소리를 들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진리를 가리는 교리에 대해 부정합니다. 실제로 많은 교리가 진리를 깨닫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교리가 기독교를 형성시키고, 발전시켰을 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혹시라도 교리가 진리를 보호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우리의 보호가 필요 없으십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러분께 제가 아는 기독교를 권합니다. 기독교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지난 삶을 돌아보시면, 여러분은 어렵지 않게 창조주 하나님의 간섭을 느끼실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간섭하셨는지 기독교를 통해서 발견하실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시면, 그를 통해서 여러분의 남은 삶이 새롭게 변화되실 겁니다. 불확실하고 불안하기만 했던 미래가 확실하게 보일 겁니다. 여러분이 처한 여건에 제한 받지 않는, 논리로 이해되지 않고, 수치로 계산되지 않는 놀라운 것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크리스챤으로 살면서 보통 두가지 기적을 경험하시면 좋겠습니다. 첫번째 기적은 '구원의 기쁨' 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여러 가지 죄로 인하여 평안히 살지 못하고, 불안과 절망 속에 확률이 높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죄악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기쁜 소식일 것입니다. 기쁨은 일제 치하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옥에 갇혀 있다가 해방을 맞이하는 기쁨에 비유하면 좋을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어 것이 아니고,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두번째 기적은 아무 것도 있는 것이 없다고 절대적 절망의 상황에서 주어지는 위로와 평안과 소망의 기쁨입니다. 제가 경험한 기적을 어떻게 설명할 있을까요? 제가 예수님을 통해 얻는 신비한 체험들을 여러분도 경험하시면 좋겠습니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할 밖에 없는 절망의 상황에서도 저를 넉넉히 인도하신 것은 예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런 기적을 경험했지만, 저는 없을 만큼 여러 사랑과 은혜를 배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손을 내밀면 붙잡아 주시는 변함 없고, 한이 없는 사랑, 말이나 글로는 도저히 표현할 없는 어떤 것을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대신해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중보하시고, 능력을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인간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우리가 이세상에서 가진 모든 환경을 극복하고 세상을 이길 수 있게 하는 힘이십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에게, 간절하게 은혜를 사모할 때에 오십니다. 또 우리를 강권적으로 사용하기 원하실 때 우리에게 오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빛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뜨거운 불길 같이, 어떤 사람에게는 평안함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넘치는 감격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샘솟는 기쁨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우뢰와 같은 소리로, 어떤 사람에게는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임하십니다. 제가 지금까지 추론으로, 논리로 여러분께 말씀 드린 모든 것은 아쉽지만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성령' 만이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간절히 부탁 드립니다. '성령' 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성령' 을 사모해 주세요.

이제 삶의 종반을 지나고 계시는 여러분 ! '예수님의 은혜' 이것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극복하게 해주는 와일드 카드 입니다. 와일드 카드가 없다면 우리는 지은 만큼 벌을 받아야 하고, 우리가 행한 선행 만큼 상을 받아야 하는데, 원칙 아래서 우리는 성공할 없습니다. 더우기 지난 시간 보다 남은 시간이 훨씬 적은 아쉬운 현실에서, 우리를 역전시켜줄 엄청난 와일드 카드는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가 이세상 삶을 성공적으로 마치기를 기대하시며, 예수님의 사랑을 띵에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는 당신의 아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이세상의 많은 한계를 극복하는 힘입니다. 이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이세상을 지나간다면 그것은 정말 후회스런 일입니다. 예수님은 없이 많은 분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사랑의 손을 내미셨을 겁니다. 부디 이제라도 분의 손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주변을 살펴보시면, 신실해 보이는 기독교인이 계실 것입니다. 분에게 연락하세요 ! "내가 예수님에 대해 관심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고 말씀하세요.  그분은 기쁘게 당신을 맞으실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지금까지 여러분을 미혹하던 '이해 안가는 교리' '교회의 비리''위선적인 기독교인''헌금 강조하는 설교''새신자 라고 아랫 사람 대하 하는 교인들' ... 이런 모든 것은 무시하셔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여러분을 미혹하여, 여러분의 삶을 실패로 끌고가려는 사탄의 짓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나를 도우시는 예수님만 바라보세요.

부디 여러분의 지난 삶을 돌아보시며, 창조주 하나님을 인식하시고, 교회에 나가시고,  예수님의 은혜를 깨달으시고, 성령을 경험하셔서 변화되시길 기원합니다. 변화를 통해서 지금껏 하지 못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역동적으로 하심으로 마지막 순간에 인생의 역전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자로 나중 자가 많고, 나중 자로 먼저 자가 많으니라. "

그리고 궁금하신 것이나,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sungamos@gmail.com 으로 연락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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