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1일 일요일

8년을 지나며...

하나님 긴 방황을 마치려 합니다.
제 나이 이제 쉬흔. 계속 흔들려왔고, 앞으로도 흔들리겠지만, 이제 저를 당신 앞에 놓으려합니다. 저를 당신께 드리려 합니다.
더 준비가 필요한가요? 더 많은 훈련을 받아야 하나요?
하나님! 이 모습 이대로 그냥 받아주세요! 기쁘게!

예수님, 당신의 길을 따르겠습니다. ‘종’의 신분으로 당신의 제자들이 걸은 길을 걷겠습니다.십자가의 길을 걷겠습니다. 이제 어떤 선택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돌아보면 지난 50년간의 복잡했고, 잘못 했던 제 삶은 몇번의 큰 커브를 그렸습니다.
첫번째 커브는 국민학교 6학년 때입니다. ‘주님을 만났습니다.’
유아세례를 받고도 교회에 죽어라고 나가지 않다가,
국민학교 6학년 때, 주님을 제대로 만났습니다. 너무도 뜨거웠습니다. 그 뜨거움이 저로 하여금 어떤 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못견디게 만들었습니다. 날마다 교회에 갔습니다. 속회를 포함한 모든 공예배에 나갔습니다. 방학 때마다, 기도원엘 갔고, 한 주일에 한, 두번은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찬양을 하고, 봉사를 하고… 이렇게 중고등 학교 시절 뜨겁게, 너무 열심히 신앙생활했습니다.
청년이 되어서도, 결혼을 하고도,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하며 인정받으며, 조금은 튀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세상의 삶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많은 친구를 주셨고, 친구들로부터 인정받게 하셨고, 만나는 거의 모든 집단에서 리더가 되게 하셨습니다. 특별한 사람, 큰 사람이 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 속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한얼산 기도원 부흥집회 시에 들은 “지도자가 되어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만들라!” 는 음성 처럼, 정치가가 되는 길을 걸었습니다.

두번째 커브는 서른여섯 살에 찾아왔습니다. ‘내가 잘 못 살아왔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조금 잘 나가던 사업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최고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라고 생각하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 놀 수 있을까? 하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고, 봉사도 했습니다. 무엇인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한얼산 기도원의 부흥회 시에, “모세와 같이 되어라!” 라는 음성을 듣고 정치가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이상하게 얼마 지나지 않은 대학교 때부터 기도만 하면, “내 양을 먹이라!” 는 음성만 들려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 들려오던 음성이, 서른여섯 살이 되면서부터 점점 크게 들려오는 것입니다.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돌아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의 비유’ 가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내가 최고’ 라고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에 ‘더 많은 달란트를 빚진 자’ 가 되었버렸습니다. “내가 가장 잘난 사람이다.”에서 “내가 가장 큰 죄를 진 사람이다.”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나를 그렇게 변하게 했습니다. Tres Dias 가 하나였고, IMF 의 여파로 인한 사업의 부도도 하나였고, 친구와 주변 사람들의 배신도 하나였습니다. 5년 간의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정점이었던 3년 정도는 눈물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제 기도는 하나였습니다. “하나님! 저를 데려가 주세요!”

마흔 세살에 미국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해 마흔 세살에 제 삶의 세번째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이제 주의 종이 되겠습니다.” 야간 빌딩 청소를 하기 위해, 80번 도로를 달리며 좋은 경치와 공기에, 그리고 미국 생활에 감사하는 순간에 천둥과 같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직도냐!”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음성이지만, 당황스러워서 차를 길 가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지금 갚아야 될 빚이 얼마냐? 아직도 네 빚이 남아있느냐?”

지난 시간들. 기도만 하면 “내 양을 먹이라!” 라는 음성이 들려왔고, 점점 더 자주, 점점 더 크게 들려왔었습니다. 그래서 2002년12월31일, 마흔 두살의 마지막 날, 송구영신 예배를 준비하면서 기도하다가, ‘꾀’ 가 떠올랐습니다. 당시는 부도 후에 다시 일어서려고 무진 애를 쓴 결과로, 조금 더 하면 기반이 잡혀갈 것으로 기대하던 시점이었습니다.
“하나님 내년 한해 동안 제 가 사업을 통해서, 정확히 제가 진 빚 만큼만 벌게 하시면, 모두 정리하고 ‘주의 종’ 이 되는 길을 걷겠습니다. 하지만, 조금 모자라게 벌거나, 넘게 벌게 하시면, 계속 사업을 하면서, 평신도로서, 교사로서 최선을 다해서 양을 먹이는 자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서원기도를 하면서, 나는 참 대단한 잔머리를 가졌다고 스스로 여기며 흡족했습니다. 주의 종의 길을 걷는 것 보다는, 사업에 성공한 후, 정치가가 되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기에, 아무리 하나님일지라도 어떻게 정확히 빚을 딱 갚을 만큼만 돈을 벌 수 있게 하겠냐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이 서원기도를 한 후에 거짓말처럼 ‘내 양을 먹이라!’ 라는 음성이 그쳤습니다.

이렇게 4개월 쯤 지난 어느 날, 전혀 계획한 바 없이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의 말처럼 ‘누구보다도 미국에 올 확률이 없었던 나’ 였기에, 미국에서 삶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상상해 볼 수도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빈 손으로, 신분도 없이, 영어도 안되고, 여건도 없는… 이런 삶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천둥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 것입니다.

제가 진 빚을 인간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 으로 정확하게 갚아 주신 것입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게. 몇일이 지나고 어느 목사님을 통해서 다시금 들려주셨습니다. ‘일만 달란트’ 는 스스로의 노동력으로 일해서 갚을 수 있는 금액이 아니기에, 하나님은 탕감해 주신 것이다. 우리의 죄를 우리 스스로가 씻을 수 없듯이. 채권자의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기에 채권자가 탕감할 필요 없이, 아니 탕감할 권리가 없고, 채권자의 주인이 탕감하는 것이 진정한 탕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탕감은 흔적도 없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자는 평생을 ‘탕감 받은 자’ 로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로부터 ‘주의 종’으로 살기를 결심해야 했습니다만, 모토만 그렇게 내걸었지, 아니 말만 했지, 삶의 변화는 미미했습니다. 다니던 교회를 사역지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봉사했습니다. 7년 여 동안, 후회하지 않을 만큼.

그런데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이것이 아니였습니다. 당연히,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타협, “내 양을 먹이라!” 는 음성에 평신도 교사로서 충성한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삶이라는 것을. 제 생계를 핑계로 내세웠고, 하나님은 기다려 주셨지만, 저는 말만 내세우고 미적거렸습니다.

그랬더니, 저를 내모셨습니다. 뉴저지연합교회라는 ‘편안한 나의 사역지’ 에서 광야로. 8년간 다니던 교회, 인정받으며 열심히 사역하던 사역지를 떠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광야의 생활을 분노로 시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누군지?’ 를 돌아보며, 떠올리게 하셨습니다. 너는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최대의 죄(빚)인 일만 달란트를 빚진 자이다. 그 죄(빚)을 용서받은 자로서의 마땅한 자세를 취하라고 명하십니다. 너는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누구도 정죄하지 말라! 이에 대한 모든 네 생각을 접어라! 왜냐하면 너는 ‘내 종’ 이기 때문이다.

내! 주님! 이제 제 삶의 마지막 커브를 지금 그리겠습니다. 다시는 변하지 않으렵니다. 그리고 맹세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 주님! 저는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당신의 종 입니다. 당신이 만드시고, 당신이 제게 보내시는 모든 사람을 섬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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