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4일 목요일

신학대학에 가다 !

제 나이 쉬흔 넷(한국 나이), 뉴저지의 Drew 라는 대학의 신학과정에 지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정말 뜨거운 신앙으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저는 목사가 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당시 신학대학은 교회다니면서 성적이 잘 안나오는 아이들이 가는 경향이 있었던 관계로 저는 직접 신학대학으로 진학하지 않고 일류대학에 입학한 후에 신학대학으로 편입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해서 2년을 다니고, 감리교신학대학으로 편입한다는 것이 계획이었습니다.

서울대에 들어가지 못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20대 후반에도 Calling 을 느끼며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었고, 40대 초반에는 기도할 때마다 들리는 음성을 감당치 못해 하나님께 서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깨닫게 되었지만, 그 서원의 결과로 미국생활이 시작되었고, 미국에 와서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야단치시는 아주 강력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께 말씀드렸고, 그 목사님께서는 잘 생각했다고 하시며, 목사가 되는 코스웍을 밟도록 해주겠다고 하셨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10년 넘게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다.

저는 하나님께 아뢰었죠? 분명히 Calling 을 따르려고 액션을 취했는데, 안되는 것이니 더이상제게 뭐라고 하시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계속 Youth Group 아이들을 가르치며 '평신도 사역' 으로 사역방향을 잡고 있었습니다. 한국과 미국에 걸쳐서 25년 이상을 Youth Group 과 청년들을 가르쳤었습니다. 젊은이들을 모아 제대로 된 봉사단체를 만드는 것이 사역의 목표였습니다. 평신도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제 이메일 ID 가 제 이름 sung 와 선지자 amos 를 합친 것인데, 저는 정의를 외치는 아모스 선지자를 본받자는 뜻에서 택한 것이었는데, 나중에 이 아모스 선지자가 구약에 나오는 수많은 선지자 중에 유일하게 선지자 교육과정을 밟지 않은 평민 선지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나에게 평신도로서 사역을 하라는 싸인인거야. 나는 목사라는 타이틀을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일분일초를 아껴서 사역할거야!" 라고 계속적인 다짐을 하였었습니다.

다니던 교회에 문제가 있어서 교회를 떠났고, 교회를 같이 떠난 사람들이 만든 교회에 합류했습니다. 새로운 교회에서 교회학교 운영에 대한 의견차이가 있어서 교회학교 교육에 관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Youth 에 대한 교육이 소명이라고 생각했던 저는 실업자가 된 심정으로 주방봉사에 열중했습니다. 그러다가 친한 장로님이 양로원 사역에 참여하려 하는데, 같이 가자고 하시기에, 뉴저지 노우드에 있는 '은혜양로원' 이란 곳에 갔고, 자연스럽게 그곳에 계신 한국 노인분들 40여 분이 드리는 주일예배를 돕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주관하시는 목사님께서 '수요성경공부' 프로그램을 만드시는 데에 참가했고, 노인분들에게 성경공부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성경공부를 가르친 지 7개월이 되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평신도 '권사' 라고 수차례, 아니 수십차례 말씀드렸고, 예배 시에 사용하는 주보에도 권사라고 분명히 쓰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노인분들은 저를 목사라고 부르십니다. 저도 얼마 전부터는  목사가 아니라 권사라고 바로잡아 드리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분들 중에 몇몇 분은 자꾸 까먹으셔서 저를 목사라고 부르시지만, 또 어떤 분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저를 목사라고 부른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 입에서 나오는 축복의 말씀이 평신도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으실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UMC (미연합감리교회)의 제도 중에 평신도에게 목사의 타이틀을 주어 목회할 수 있게 해주는 Lay Pastor 제도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한국에 계신 누님이 뉴저지 지역의 감리사를 잘안다고 하신 것이 떠올라서 그 감리사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그 이메일을 저와 Youth 사역을 같이 하셨던 목사님이 보시고는 제가 Lay Pastor가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겠다고 메일을 보내셨습니다. 맨하탄에서 젊은 층을 대상으로 목회를 잘하고 계시는 그 목사님께서 쎄미나도 다녀오시고, 여기저기 알아보시고는 지난 주말에 저와 만난 자리에서, Lay Pastor 가 되는 것이 의외로 기간도 오래 걸리고, 된 후에도 사역지에 대한 제한이 많아서 원하는 사역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시면서, 정식으로 신학 과정을 밟을 것을 강력하게 권하셨습니다. 학교도 알아봐 주시고, 학비도 웨이브받게 해주실 수 있다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하룻 동안 생각하고 와이프에게 말했습니다. "돈도 못벌면서 무슨 신학이냐고 !" 하지는 않더군요.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지만, 평신도 사역한다고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낫다고 했습니다. 오늘 Drew 라는 UMC 에서 만든 대학에 온라인으로 원서를 접수했습니다. 많이 늦었기 때문에 2015년 가을 학기에 시작하는 것으로 신청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Drew 를 추천하신 목사님께서는 일단 접수해 놓고, 이번 학기부터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십니다. 지원서에 두분의 추천서가 있어야 하기에, Youth 에서 같이 사역했던 또다른 목사님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보낸 지 5분 만에 답글이 왔습니다. 그 목사님의 메일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권사님. 드디어 하나님께 순종을 하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글을 읽는 순간에 저도 이유를 모를 웃음이 나왔습니다.

저로서는 지금도 최악의 경제상황이고, 앞날도 불투명한 시점에서 지원을 했는데, 하루도 되지 않아 안좋은 일들이 생겨납니다. 건축업을 시작해서 수입이 들쑥날쑥하더니만, 두달 남짓 제대로 된 공사가 없어서 모든 계좌가 마이너스가 되었고, 개스비도 없는 상황에서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힘들게 몇분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한달간 쓰고 갚는 것으로 해서 겨우 막았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아파트 주차장에서 주차하다가 옆에 있는 차를 살짝 긁었고, 메모를 써놓았지만, 이틀 동안 연락이 없어서 그냥 넘어가나 싶었는데, 오늘 연락이 온 것입니다. 스크레치 난 범퍼를 제대로 고치시겠다고 합니다.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빌린 돈 갚을 방법을 찾지 못해서 받고 있는 스트레스 위에, 차 고치는 비용까지 얹어져서 열받아 있는데, 바로 조금 전 옆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던 와이프는 두주 후에는 딸내미의 등록금을 보태줘야 하니 이번에는 지난 번처럼 임박해서 하지 말고, 미리 준비하라고 합니다. 와이프는 언제든 자신이 할 바는 다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당당하게 이야기하죠.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해서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도 제 마음에 떠오르는 문장은 "그래도 나는 신학대학에 간다 ! " 입니다. 추천하신 목사님께서는 학비 하나도 안내고 갈 수 있다고 하셨지만, 그것을 믿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구요. 그러기에 학비 때문에 과정을 시작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이 제 생각대로 되지는 않죠? 하지만, 저는 신학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돈도 없고, 영어도 안되고, 머리도 안돌아 가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신학대학에 간다는 것이 오히려 저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넘길 힘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합니다.

마음 속으로는 정말 신랄하게 목사에 대해 비난하고 싶었지만, 어느 정도 참았었는데, 이제 어쩌면 마음 놓고 목사를 욕할 수 있게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 제가 정말 목사가 되기는 할지? 그리고 만약 목사가 된다면 과연 어떤 목사가 될지? 어느 날 문득 저의 삶에 찾아온 이 큰 변화를 지켜봐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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