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일 월요일

주기도문 해설

마태복음 6장9절~15절, 누가복음 11장2절~4절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유명한 산상수훈 중에 바르지 못한 기도에 대해 설명하시다가, 바른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세례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으니, 예수님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요구하자 이에 가르쳐 주십니다.

주기도문을 가르치시기 전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주목해 보십시요!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하라! 여기서 먼저 주목할 것은 ‘What 무엇을’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How 이렇게’ 즉 이런 방식으로 기도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의 주문처럼 그것을 외우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모범적인 기도의 방식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여러분 모두가 주기도문을 외우는 데에 머무르지 말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이 알려주신 최고의 방법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 하나 살펴보죠! 기도는 먼저 기도를 받으실 대상인 하나님을 부르면서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어떻게 불렀을까요? 먼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고 했습니다. 하늘이란 무엇을, 아니 어디를 말할까요? Heaven 은 Sky 를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천국을 가르치는 것도 아닙니다. 하늘은 이 세상을 초월해서 존재합니다. 모든 것을 초월해 있지만, 세상과 떨어져서 무관한 곳이 아니라, 세상의 한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세상을 간섭할 수 있는 곳을 말합니다. 모든 것 위에 계시다라는 의미라고 생각합시다.

그리고는 ‘우리 아버지’ 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아버지' 라고 부르라고 하신 것에 주목합시다.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우리' 라는 단어에 주목하세요! 이렇게 함으로써 예수님과 모든 제자들, 아니 우리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 한가족이 됩니다. ‘우리’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을 부른 후에, 무엇을 할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말을 하던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이 좋겠죠? 예수님은 이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실체를 보이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오직 그분의 이름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름은 하나님을 대변합니다. 이름이 하나님을 말한다면, 과연 누구에 의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신다는 것일까요? 예! 맞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말하겠죠! 기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이 제 안에, 제 삶속에서 항상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니 저를 그렇게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내용입니다.

다음으로 ‘나라이 임하옵시며’ 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없고, 마태복음에만 있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는 나라이 임하옵시며에 대한 부연설명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여기서 ‘나라’ 란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는 것은 당연하겠죠? 따라서 ‘나라’ 란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곳을 말합니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기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은 누가 다스릴까요? 이 땅은 이미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보고, 느낄 수 있느냐? 가 문제일 뿐입니다. 따라서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는 이 땅을 바라보는 기도자에게 달려있다고 봐야 좋을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 부분을 이렇게 풀어보고 싶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땅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완벽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 부분을 기도할 때마다 저는 큰 힘과 위안을 얻습니다. 우리에게 이것을 허락해 달라고 얼마든지 기도해도 좋습니다. 수 없이 많이 기도하세요! 로또 맞게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죠? 공부 안하고 좋은 성적 나오게 해달라는 기도도 아니구요. 노력 없이 어떤 것을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그의 소교리문답에서 일용할 양식을 양식, 음료, 의복, 집, 좋은 친구, 아내, 자식, … 좋은 정부 등 20가지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기에서 일용할 양식이란 우리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또 시간적 개념이 들어있습니다. '일용' 이란 오늘을 살 양식이라는 말이죠. 내일과 미래를 위한 양식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이 오늘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을 깨달으실 겁니다. 오늘을 허락하심에 대한 감사는 내일도 계속될 것입니다. 따라서 더 나은 내일에 대한 기원이 들어있습니다. 어쨌든 여러분은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요구할 수 있습니다. 아니 자녀로서 당당하게 요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공부할 시간을 달라고 기도하시고, 부모님이나 동생, 친구를 도울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두 주전 설교에서 1억불 탕감받은 자가 1천불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해서 망하게 되는 비유를 들었죠? 우리가 용서할 남의 죄는 몇가지 안됩니다. 그것도 나에게 직접 죄를 지은 자의 죄만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그다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내가 하나님께 용서받아야 할 죄는 엄청나게 많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의 용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인가요? 아마 모두가 자신이 많은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간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이익입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에게 형제의 죄를 용서하겠다는 다짐을 항상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시는 것이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면, 우리는 거의 넘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해 시험하시기도 하고, 우리를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시험하십니다. 시험과 악은 항상 우리의 곁에 있습니다. 욥과 같은 대단한 사람도 결국은 시험에 쓰러지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시험이라는 단어와 악 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새기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시험에 잘넘어지고, 쉽게 악에 빠지는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고백하며 이를 극복하려는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항상 근신하며, 자신을 돌아보며 살도록 하시는 예수님의 바램이십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여기서 나라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말하고, 이는 백성과 영역과 주권으로 구성됩니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권세란 힘을 말합니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죠. 영광은 찬란한 빛을 떠오르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추면 어두움이 물러가고, 정의와 생명과 기쁨이 넘칩니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다는 이 송영부분은 우리의 고백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늘 이렇게 고백하면서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대개’ 란 무슨 뜻일까요? 영어로는 For 라고 밖에 표현되어 있지 않는데, 왜냐하면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대략적으로 보면 이라고 봐야 할까요? 아니면 큰 원칙으로, 크게 보아서 라고 할까요? 큰 의미가 없다고 하는 이 '대개' 라는 단어는 1970년대에 감리교단에서는 없어졌다가, 90년 대에 모든 교단이 찬송가를 통합하면서 주기도문도 통일될 수 밖에 없었고, 이런 과정에서 다시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큰 원칙으로 보아' 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살아가라는 말씀으로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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