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6일 화요일

양로원 성경공부 7과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야곱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 그의 이름 야곱의 뜻은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발꿈치입니다. 별로 자랑스럽지 못한 이름이죠? 이런 그의 이름이 축복의 약속과 함께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그의 삶과 축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브엘세바에서의 야곱
야곱은 출생부터 특별합니다. 어미의 복중에서 먼저 나가려고 싸움을 벌이고, 에서의 발꿈치를 붙들고 세상에 나옵니다. 에서와 달리 장막에 거하며, 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요리도 잘했던 같습니다. 팥죽을 요리하고 있는 중에 에서가 왔고, 경솔한 에서를 꼬셔서 팥죽 한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뺐습니다. 이어서 늙어 사물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삭이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기 위해 에서를 사냥 내보낸 동안에, 야곱의 어미 리브가는 음모를 꾀하여 이삭이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기도를 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에서가 야곱을 죽일 것을 두려워한 리브가는 야곱을 하란에 있는 자기 오빠 라반의 집으로 도망치게 합니다.

2. 벧엘에서의 야곱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던 야곱은 들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자다가 꿈을 꿉니다. 땅위에서 하늘까지 이어지는 사닥다리가 있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하였고, 위에서 여호와가 말씀하십니다. 28:13 -15  누운 땅을 내가 너와 자손에게 주리니,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야곱은 잠에서 깨어, 두려워 떨며 자신이 베개로 삼은 돌로 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붓고 서원을 합니다. 기둥을 세운 것은 기념한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기름을 붓는 것은 거룩하게 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냥 평범한 돌기둥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념하는 돌기둥이란 의미겠지요? 야곱이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난 순간입니다. 야곱은 그곳을 벧엘’ (하나님의 ) 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여기서 야곱의 서원은 의미가 있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지키시고, 편안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길 것이고, 기둥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이고, 것의 십분의 일을 바치겠다는 조건을 내겁니다. 우리의 기도들을 살펴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조건을 거는 우리가 되어야 겠습니다.

3. 야곱과 라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야곱은 레아와 라헬을 만납니다. 라헬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뺐긴 야곱은 라헬을 위해 7년간 무보수로 일했으나, 라반은 약속을 어기고, 풍습을 빌미로 레아를 내줍니다. 그래서 야곱은 다시 7년을 라헬을 위해서 일합니다. 아내를 얻은 야곱은 이제는 재산을 모으기 위해 일을 하나, 라반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술수를 써서 라반의 재산을 뺐다시피 합니다.
과정에 하나님이 개입하셨는 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없습니다. 어쨌든 얼룩무늬 또는 검은 점이 있거나, 검은 양들과 얼룩무늬 또는 검은 점이 있는 염소들이 야곱의 소유가 되었는데, 양이나 염소의 평균수명이 7~10 정도인 것으로 보아, 야곱이 편법을 6 정도면 건강한 양과 염소는 거의 야곱의 것이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라반의 아들들의 표현대로 라반의 재산을 빼았아서 거부가 됩니다( 31:1 ).  이렇게 해서 결국 야곱은 라반과 갈등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4. 야곱의 자식들
야곱의 자식들과 이름을 살펴봅니다. 레아와 라헬 이외에 레아의 시녀 실바와 라헬의 시녀 빌하까지 야곱의 처가 됩니다. 이는 그녀들의 시기, 특히 라헬의 시기로 인해 비롯된 것입니다. 처로부터 낳은 야곱의 열두 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레아가  르우벤 ( 보라 아들이다 ), 시므온 ( 하나님이 들으셨다 ), 레위 ( 연합하다 ), 그리고 유다 ( 찬송하다 ) 낳고 생산을 멈춥니다. 이어서 라헬의 시녀 빌하가 ( 재판관, 억울함을 푸셨다 ) 납달리 ( 경쟁하다 ) 낳습니다. 레아의 시녀 실바가 ( 복되도다 ) 아셀 ( 기쁘도다 ) 낳고, 다시 레아가 잇사갈 ( , 값을 주셨다 ) 스블론 ( 후한 선물) 낳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라헬이 요셉 ( 나의 부끄러움을 씼으셨다,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 베냐민 ( 오른손의 아들, 믿을만한 아들 ) 낳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열두지파가 만들어 집니다.

5. 라헬의
라헬의 삶을 들아보고자 합니다.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도 예뻤던 라헬 ( 29:17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식을 낳지 못합니다. 언니 레아가 네명의 아들을 낳자 이를 시기하여 자신의 시녀 빌하를 야곱에게 줍니다. 빌하가 아들을 낳으면 자기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빌하가 아들을 낳았음에도 그는 좋아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레아도 마찬가지로 자기의 시녀 실바를 야곱에게 후처로 주었고, 실바도 아들을 낳습니다. 이때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들에서 귀한 합환채를 구해오자, 라헬은 욕심을 내서 이를 빼았습니다. 이로 인해 오히려 레아가 좋아져서 레아는 아들을 낳게 됩니다.
레아가 아들 넷을 낳았을 , 라헬이 아들을 낳지 못함을 분내하며 야곱에게 투기를 했다가 야곱에게 야단을 맞습니다. ( 30:1-2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형을 투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야곱이 라헬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 하지만 라헬은 깨닫지 못하고, 빌하를 주고, 합환채를 뺐고 하는 인간적인 방법을 추구합니다. 그러다가 라헬은 깨닫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빌게 됩니다. ( 30:22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소원을 들으시고 태를 여신고로) 이렇게 라헬을 그렇게 기다리던 아들 요셉을 낳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라헬은 끝까지 자기 자신의 생각에 의존하는 인간적인 삶을 삶니다. 아비 라반의 드라빔을 훔쳐오는 사건을 통해서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벧엘에서 에브랏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로 삶을 마칩니다. 오죽하면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 ( 슬픔의 아들 )라고 불렀을까요? 그리고 길에 장사됩니다. 안타까운 삶이죠. 라헬의 삶을 통해서 우리 모두의 삶을 다시 한번 뒤돌아 보았으면 합니다.

6. 야곱의 귀환
라반과 갈등관계에 놓이게 야곱에게 하나님이 명하십니다. ( 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조상의 ,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 하나님의 명을 들은 야곱은 레아와 라헬에게 동의를 구합니다. 이 과정에 야곱이 두 부인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신 이야기를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하여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야곱이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날조해 낸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부인들이 흔쾌히 동의하자, 야곱은 부인들과 자식들, 그리고 소유물을 이끌고 외삼촌 라반에게 알리지 않고 은밀하게 하란을 떠납니다. 더우기 라헬은 아비 집의 드라빔을 훔쳐갑니다. 소식을 듣고 화가 라반이 칠일 길을 쫒아가 야곱을 따라잡습니다. 그러나 야곱을 만나기 전날 밤에 하나님이 라반에게 현몽하여 말씀하십니다.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 31:24라반은 하나님의 명에 순종하여 야곱을 고이 대합니다. 라헬이 훔쳐간 드라빔도 찾지 못했음에도 말입니다. 라반과 야곱은 그곳에서 기둥을 세우고, 돌무더기를 만들어 증거로 삼고 언약을 합니다. 야곱은 곳을 하나님이 우리 둘을 감찰하실 것이라는 의미로 미스바라고 부르는데, 이곳이 유명한 사무엘의 미스바 광장 입니다.

7. 야곱의 회심
에서가 어떻게 반응할 지에 대해 두려운 야곱은 사자를 에서에게 보냅니다. 사자가 돌아와서 무서운 이야기를 전합니다. 에서가 사백인을 데리고 오고 있다고 말입니다. 야곱은 무리를 떼로 나누어 만일 에서가 떼를 , 다른 떼가 피신할 있게 합니다. 그리고 에서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한 선물을 보냅니다. 선물도 여러 떼로 나누고 서로 상당한 거리를 두어, 떼를 치면 나머지로 피할 시간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는 모든 가족들로 요단을 건너게 하고, 본인은 얍복 나루에 남아 밤을 지샙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 32:24 ) 이기지 못하자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위골이 되게 합니다. 하지만 떠나려는 사람을 붙잡고 야곱은 회심합니다.   당신이 나에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사람이 가로되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 32:26-28 )
여기서 우리는 밤새도록 씨름한 야곱이 그사람에게 자기의 이름을 대답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발굼치 , 악착같이 이기려는 삶을 사람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삶을 살라고 말입니다. 그의 삶이 자신이 다스리는 삶에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삶으로 변화되는 순간입니다.
이스라엘 의 뜻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습니다. 28절 말씀을 들어서 이스라엘의 뜻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다." 고 하기 쉬운데, 여기서 겨루어 이기었음이라는 야곱에게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을 준 이유를 말하는 것으로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쓰인 히브리어 sara 가 겨루었다는 뜻과 다스린다는 뜻을 모두 가지고 있기에 더 혼란스럽게 되었죠. 이스라엘의 바른 뜻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변화된 후에 야곱은 담대히 에서를 맞이합니다. 야곱이 눈을 들어보니 에서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오고 있었는데, 야곱은 이전과는 달리 담대하게 제일 앞서 나가 에서를 맞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죠?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 ( 33:4 )  놀라운 용서와 화합의 순간이죠. 에서의 마음은 ? 어떻게? 변했을까요 ? 를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인 것 같습니다. 


야곱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 야곱은 조용히 머리를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집요하고,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변화되었고,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야곱과 같이 변화되는 삶을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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