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5일 금요일

당신은 유혹을 이기실 수 있습니까?

저는 이기지 못합니다.

한심하게 보실 지 모르지만, 저는 만화를 너무 좋아합니다. 일곱살에 보기 시작한 만화를, 정말 줄창 봤습니다. 28살에 결혼하기 전까지는 한국에 나오는 남자용만화는 다 보았다고 할만큼, 시간과 정력을 낭비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부터 3학년까지 한 1년 반동안은, 하루에 무협지를 다섯권 이상 읽었다고 할만큼 미쳐있었습니다. 더 이상 볼 무협지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끊었죠. 대학교 때는 어디에 빠졌을까요? 제가 대학에 들어갈 즈음부터 한국에 비디오가 보급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하루에 포르노를 다섯편 본적도 있을 정도였다면 말다했죠?

국민학교 6학년 때, 만화가게에서 처음으로 당구를 쳐보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에는, 얼마나 당구에 미쳤었는가 하면, 종례를 마치고 만화가게에 가면 당구대를 차지할 수 없으니까, 수업이 끝나면, 종례를 하지 않고, 바로 당구장으로 뛰어갔습니다. 1학기 내내 그랬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여름방학이 시작될 즈음에, 저희 학교에서는 더이상 제 상대가 없게 되었고, 저의 승부욕이 식어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교도주임을 맡으셨던 꽤 엄한 여자선생님 이셨는데, 몇번을 불러 야단치고, 벌도 세우시다가, 포기하시더군요.

여기까지만 말씀드리면, 제가 막나가는 사람처럼 느껴지실까봐, 그 후를 간단히 말씀드리면, 2학기가 시작되자 마자, 교내 합창대회가 있었는데, 학교에 풍금이 2대 밖에 없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오는 두반 만이 풍금을 이용해서 합창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풍금을 차지하기 위해 모든 반들이 대책을 세웠죠. 저희 반도 계획을 세우는데, 제가 자진해서 풍금을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두주간을 새벽 5시에 학교에 왔습니다.  잠긴 교문을 넘어서 본관건물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숙직선생님께서 문을 열어주셨고, 혼자서 풍금을 별관 2층까지 옮겼습니다. 2주 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고, 저희 반은 풍금을 가지고 연습할 수 있었습니다. 합창대회가 끝나고, 담임선생님은 저를 교도실로 불러서, 수고했다고 선물을 주셨습니다. 만년필, 볼펜 셋트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선생님이 커피를 타시면서, 제게도 커피를 타주셨고, 커피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커피 마시고 싶으면 오라고 하셔서, 그후로도 몇번 교도실에서 커피를 마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후로는 잊고 지내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스승의 날에 은사에게 편지를 쓰라고 해서, 그 담임 선생님이 생각나 편지를 쓰고는 잊어먹고 있었는데, 어느날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이 편지를 들고 저를 부르셨습니다. "어떻게 된 놈이 연애편지가 학교로 오냐?" 하며 회초리로 때리는 시늉을 하시면서, 편지를 주셨습니다. 편지는 그 담임선생님께서 보내신 것이고, 그 후로 2번 정도 편지를 주고받았죠. 지금 같았으면, 카톡하면서 계속 연락을 했었겠죠!

가장 부끄러운 기억은 22살 정도부터 다니기 시작한 퇴폐이발소를 36살까지 거의 15년간을 끊지 못하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물론 퇴폐이발소만 다닌 것은 아니고,또 퇴폐이발소라고 해서 무조건 이상한 짓을 다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워낙 안마를 좋아했기 때문에, 건전하게 안마 잘하는 곳을 찾아서 먼거리를 다니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22살부터 퇴폐이발소를 다녔냐고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중학교 1학년부터 28살까지 서울에서 최고의 우범지대라 할 수 있는 천호동이란 곳에 살았는데, 중학교때부터 아버님과 제가 함께 다니던 이발소가 제가 대학에 들어갈 즈음에는 커텐을 치기 시작했고, 오래전부터 있던 면도를 해주던 누나가 팔다리를 주물러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스물두살 때부터는, 칸막이가 설치되고,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필이면 제가 다니던 이발소가 당시에 천호동과 가락동에 최초로 생긴 몇군데의 퇴폐이발소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당시 마싸지는 제가 도저희 이길 수 없는 유혹이었습니다.

중학교 때 시작한 자위도 도저희 이길 수 없는 유혹이었죠. 중고등학교 시절에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했던 대부분의 남학생들이 가졌던 가장 큰 이슈가 바로 '자위를 끊느냐? 회개를 끊느냐?" 였습니다. 함께 갈등했던 모든 아이들이 다 유혹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회개하고 또 실패하고, 회개하고 또 실패하고... 강직한 편인 아이들은 자위를 끊지 못하니, 당연히 회개를 끊게 되었죠. 이 문제로 교회를 떠난 아이들도 있습니다. 당시 성행하던 성인만화, 그리고 소위 빨간책과 플레이보이지 앞에서 아무도 한달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고, 거의 매일 밤 철야기도를 하면서도, 자위의 유혹 앞에 쓰러지며, 눈물짓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유일한 대안은 "최대한 자제해보자! 하지만 유혹에 넘어가더라도, 회개를 포기하지는 말자! " 였습니다. 이 갈등은 대학시절에 와서야 자리를 잡았습니다. 계획을 세워서하자! 와 내가 만날 가능성이 없는 사람만을 떠올리며 하자! 였습니다. 이로써 어느 정도 조절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술이나 담배와 마찬가지로 자위 자체가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자위를 죄라고 생각하고, 그 유혹과 싸우며 힘들어했던  사람들만의 문제겠지요.

아마 마흔살 쯤 되었을 겁니다. 신림동에 있는 어떤 교회가 노숙자들을 위해 운영하는 쉘터에서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제 또래나, 저보다 조금 젊은 친구들이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열명이 조금 넘었었는데, 그들 모두와 꽤 친해졌었습니다. 저녁도 같이 먹고, 성경공부도 가르치고, 또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구요. 어느날 밤에 한친구가 자체 통금시간인 12시를 넘어서 쉘터로 돌아왔습니다. 저를 보더니, 죄송하다고, 죄송하다고 하다가 결국은 울먹이면서 말을 했습니다. "권사님! 저는 도저희 가망이 없는 인간인가봐요!" 그를 붙잡고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늦은 시간이어서 별로 이야기를 못했고, 다음 날 찾아가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얼마나 저축을 했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목수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고정적으로 일하는 곳이 있어서, 버는 돈 거의 전부를 저축할 수 있는 상황이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질문에 그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통장에 잔고가 거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돈을 한푼이라도 더 모아서 부인과 자식들 앞에 가야 하는데, 돈이 조금 모이기만 하면, 도저희 참지 못하고 근처에 있는 단란주점에 가서 술마시고, 여자와 자는 데에 써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참으려해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말을 하던 친구는 거의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고, 저는 고심하며 그를 위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일 끝나고 쉘터로 와서 씻고 밥먹으면 7시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성경을 읽거나, TV 를 보는 일 뿐인데, 술먹고자 하는 욕망, 여자와 자고 싶은 욕망은 아무리 해도 줄어들지 않고, 힘들게 하루를 참고, 이틀을 참아봤자, 결국은 술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대로 와이프에게 가져다 주면 되지 않겠냐고 해보았지만, 이 친구들의 상황은 너무나 심각해서, 돈 조금 들고 나타날 바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두주 정도면 통장에 돈이 조금 쌓이는데,  쌓인 돈은 예외 없이, 술집에 바쳐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과 고등학교 시절에 자위문제를 포함해서, 제가 극복하지 못한 유혹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견디지 못할 것이면, 견디려고 애쓰다 쓰러지지 말고, 즐겨보자! 술만으로 해결되는 사람끼리는 일주일에 하루를 정해서 함께 호프집이나, 쏘주집에 가기로 했습니다. 또 여자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사람은, 계획을 세우고 단골집을 정하여 가되, 혼자서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쉘터의 분위기가 밝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술마시기로 한 날, 일찍 들어와서 저녁도 빨리 먹고, 멋을 최대한 내고 준비를 했습니다. 돌아와서는 교회이기 때문에 술먹은 표시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귀여워 보이기 까지 했습니다. 색씨집을 찾던 사람들도, 바가지 쓸 일도 없고, 훨씬 안정되어 보였습니다. 제 사업의 문제로 이들과 오랜 시간, 관계를 지속하지는 못했지만, 제 삶에서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었습니다.

저는 술과 담배를 중학교 1학년 때, 조금 해보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전혀 입에 대지 않습니다. 술과 담배는 제겐 전혀 유혹이 아닙니다. 도박에도 꽤 빠질 기질을 가진 것 같은데, 어느 때부터인가 전혀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성적인 유혹도 장담은 못하지만, 넘어갈 확률이 거의 없습니다. 컴퓨터 게임도, 한번 하면 열시간, 스무시간 하는 스타일이지만, 유혹이 되지는 못합니다. 야동과 야한사진, 보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지만, 일년에 한번도 보지 않습니다. 드라마 가지고도 고민을 했습니다만, 집사람과 함께 보는 드라마만 보는 것으로 선을 그엇습니다. 그런데, 끊지 못하는 것 한가지가 바로 만화입니다. 보지말자! 내가 이나이에, 이 환경에서, 돈벌 시간도 모자라고,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좋은 교사 역할하기도 시간과 에너지가 턱없이 모자라는데, 만화보고 앉았냐? 하고 자책도 해보고, 기도도 해보지만, 끊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많이 보는 것은 당연히 아니죠. 일년에 한두번 만화싸이트에 들어가 봅니다. 한번 손을 대면, 일주일 정도는 벗어나지 못합니다. 집사람 눈치보고, 아이들 눈치보면서 말입니다.

유혹은 이렇게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모든 사람이 견디지 못하는 자기만의 아킬레스건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유혹이라는 사탄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유혹에 쓰러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가요? 그러면 이런 종류의 유혹 말고, 좀더 범위를 넓혀서 생각해 볼까요? 남을 시기, 질투하는 유혹은 어떨까요? 권력을 잡고자 하는 욕망의 유혹은요? 남의 뒷얘기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틈만나면 남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적이 없으신가요? 입으로는 남을 칭찬하는 것 같은 말을 하지만, 속 내용은 그 사람을 죽이는 그런 이야기를 해보신 적은 없으신가요?

표시나게 유혹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을 볼 경우가 있습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을 볼 때, 어떤 생각으로 바라보십니까? 혹시 그것도 못참으면 그런 꼴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신가요? 여러분이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여러분 자신이 판단받으리라는 것은 생각해 보셨나요? 저는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방법을 찾는다면,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망가져가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고, 아니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을 구하는 것이 바로 나를 구하는 것입니다. 사탄에 점점 사로잡혀가는 사람에게 찾아가서 함께 도박장에도 가주고,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유혹에 빠질 시간을 없애주면서, 그의 마음 속에 사탄을 몰아내기 위해, 그의 마음이 밝고,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게 하는 노력을 해보자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유혹에 사로잡혀가는 사람을 보실 기회가 있다면, 그 사람이 시기심에 사로잡혀 있던, 낭비벽에 사로잡혀 있던, 색욕에 사로잡혀 있던, 도박욕에 사로잡혀 있던... 여러분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사탄에 사로잡혀, 음지에서 외로이 망가져가는 그를 양지로 이끌어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유혹을 견딘 사람이다라고, 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나도, 아니 모두가 견디지 못하는 유혹이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노력해야 한다.' 라는 마음가짐이어야 겠습니다. 도박을 끊을 수는 없을 지라도, 도박으로 그 사람과 가정이 망가지는 것을 막을 수는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유혹에 견디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견뎌낼 수 없는 유혹도 없습니다. 저는 만화를 끊지 못하지만, 만화를 즐겨도 되는 여건을 만들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스스로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도우면서 방법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유혹을 통해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여 세상이 더욱 밝고 아름답게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사탄의 무기인 유혹이 오히려 세상에서 사탄을 물러가게 할 수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 한 3년 전쯤에 유혹에 대해서 쓴 적이 있었습니다. 내용이나, 의도하는 바가 조금 틀릴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게 썼습니다. 긴 이야기인데, 짧게 쓰느라고 어색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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