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9일 화요일

(교) 성경을 넘어서...

기독교에 있어 가장 민감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성경에 대해서 다루려고 합니다. 제 생각이 맞다고 주장하는 글도 아니고, 저만 알고있어서 쓰는 글도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과 기독교의 발전을 위해서 틈나는 대로 생각해 보고, 논의도 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서 쓰는 것이니, 긍정적으로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모태교인인 저의 신앙은 당연히 성경을 바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꽤 성경을 많이 읽었고, 성경에 대해 많이 토론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조금 더 빨리 열심을 냈다고 보였는지, 당시에 친구나 후배들이 성경에서 이상한 부분을 찾아와서 물어보곤 했습니다. 저는 열심히 설명을 했고, 또 그들은 다른 내용들을 찾아와서 묻고, 제 대답이 틀리다고 논쟁하곤 했습니다. 저도 논쟁하기 위해서 또 성경을 보곤했습니다. 당시 서울역에 나가서 여호와의 증인 사람들과 성경내용을 가지고 논쟁하고, 그들을 놀리고 다녔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데, 20대 중반까지 성경에 대해서 갈등하고, 질문하고, 논쟁하던 친구와 후배들. 나이가 먹어가면서 아무도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이 갈등을 해결해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기독교인이라고 한다면 성경에 잘못 쓰여진 부분이 있다고  하거나, 틀린 부분이 있다고 말하면 안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천주교는 성경에 오류가 없다고 하기 위해, 중세에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 놓고는, 아주 나중에서야  "어떤 시절에 어떤 오류가 있었다!" 라고 바티칸에서 발표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결국  그 이야기는 "옛날에 무오류하다고 했던 것 중에서 일부 오류가 있었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무오류합니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어느 누가 이것을 이해하겠습니까? 신도들이 이해해줄 것으로 생각할까요? 아니면, 신도들이 뭐라고 하는 것쯤은 아무 관계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축자영감설' 소위 성경 한자 한자가 다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쓰여진 것이어서, 어떤 오류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죠. 이를 뒷받침하는 성경구절로 바울이 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디모데후서3장16절)과 베드로가 쓴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 (베드로후서1장21절) 을 인용합니다. 물론 이들이 성경이라고 말한 것은 지금 우리가 '구약' 이라고 부르는 부분일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된 39권의 'Scriptures' 가 있었을 것이고, 72인이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주장은 보통 두가지 관점에서 공격을 당합니다. 첫째는 바울이나 베드로가 성경이라고 언급한 것이 과연 무엇인가? 자기들이 쓴 편지, 글 등이 성경이 될 것이라고 알고 있었겠는가? 입니다.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쓴 것은 A.D. 66 년 경이고, 성경이 갖춰진 것은 A.D. 313년 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성경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에 성경은 틀리지 않다고 써있으니 성경은 맞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면, 이건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의 대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강단에서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목사님들을 꽤 보았습니다. '빌립보서를 쓸 때, 바울은 자신의 삶이 끝난 것으로 보고, 유서를 쓰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 말씀 속에서 여러분은 이 목사님이 바울의 글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적어도 하나님이 명하사는 것을 옮긴 것이라면 그럴 수는 없겠죠? 빌립보서를 쓰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바울은 옥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왕성하게 몇년간 선교를 하다가, 다시 옥에 갖히고 삶을 마감하죠. 조금 세련되어 보이는 목사님들이 설교하시면서 위와 같은 표현을 쓰시면서 성경을 분석적으로 풀어주시곤 하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목사님들도 엄격하게 축자영감설을 신봉하는 자세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흔히 어떤 사람이 성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 무조건 믿으라고 하거나, 믿음이 없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사탄이 씌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오래 믿으신 분들이 점잖게 충고하는 말씀은 "나도 옛날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아무 문제 없이 믿는다. 성경 속에 답이 있다." 정도입니다. 목회자들은 신학대학에서 배울 때, 성경에 대한 여러가지 관점(설)에 대해서 배웠고, 나름대로 충분히 생각을 해서 성경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취했을 겁니다. 그런데 교회에 오면, 때론 자신의 생각과는 관계 없는 이야기를 해야 하고, 거기에 자신을 쇄뇌시켜서, 아주 강력하고, 당당하게 축자영감설적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신앙의 수준이, 어린아이의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하긴 어떤 목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자기 교회 성도들의 신앙수준이 아주 낮은 수준에서 계속 머물러주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교회, 아니 한국기독교의 현주소라고 생각됩니다.

성경에 어떤 부분에 오류가 있는 지 말해보라고 하시는 분이 계실까봐, 제 입장을 말씀드립니다. 저도 지혜로워서 어디가 틀렸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저는 성경에는 저자의 한계가 많이 드러나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 보다, 저자의 생각이 더 많이 들어있다고 말해도 좋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영감을 주시고 쓰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성경이 된 것도 많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당신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관리하실까요? 하나님이 직접 쓰셨다면 과연 이정로로 밖에 못쓰셨을까요? 과연 성경이 무엇이길래? 성경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하나님의 격을 떨어트린다고는 생각지 않으십니까? 저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성경에 대해서 잠깐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B.C. 1500 년경 모세가 창세기를 쓴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니님이 혼돈스런 지구에서 우주만물과 생명체를 창조하십니다. 지구는 편평하고, 해와 달과 별이 떳다가 집니다. 창세기 2장은 어떤 차원에서는 1장과는 또다른 천지창조처럼 보입니다. 경작할 사람이 없어서 나무와 풀과 채소가 나지 않게 하시고, 사람을 만드신 후에 이런 식물들이 자라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만든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십니다. 그리고 이후에 식물이 자라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여자를 만드시고, 각종 짐승과 새를 흙으로 빚어서 만드십니다. 창세기 1장에는 말씀으로 새와 들짐승을 만드시고, 나중에 흙을 빚어서 사람을 만드시죠. 모세가 두가지의 창조설화를 연결시킨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집트의 것이던, 수메르의 것이던, 바빌로니아의 것이던, 히브리의 것이던 어쨌든 섞여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렇게 에덴동산에서 자식도 없이 살던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쫒겨납니다. 그리고는 자식을 낳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미 에덴동산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인을 최초의 살인자로 하지만, 가인이 쫒겨나며 자기를 만나는 사람이 자기를 죽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살인자는 죽음으로 죄를 묻는다는 관습 또는 법이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아니면 모세가 쓰면서 그렇게 상상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세는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손들의 나이를 아주 정확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불가능할 것으로 보여지는 데, 하나님이 알려주셔서 가능하다고 할까요? 6장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를 삼아서 자식을 낳았고, 그들이 고대의 유명한 용사라고 써있습니다. 그리이스신화의 한부분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예수님의 형제들 이겠죠?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 9대를 내려갑니다. 그 9대를 내려가면서 세상이 타락해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합니다. 노아의 홍수로 인류를 멸망시킸다고 써있습니다. 성경의 계산대로라면 B.C. 2433년 정도에 홍수가 있었습니다. 셈의 8대손인 아브라함이 출생하기 267년 전입니다. 인류가 홍수에서 살아남은 셈과 함과 야벳, 이 세명의 자손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하지만 인류최초의 문명이라고 말들하는 수메르문명은 B.C. 3000년 경부터 B.C. 2000년 경까지 전성기를 맞고 있다가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합니다. 히브리민족과 계속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이집트문명도 B.C.3200년 경에 시작되어, 알렉산더대왕에 의해 무너질 때까지 지역의 패자로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노아의 홍수가 있던 시기에 이미 중국과 한국도 부족국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성경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가 아닌, 히브리민족과 인근지역의 역사임을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셔서 쓰게한 인류의 역사라고 주장한다면, 오히려 큰 일입니다.

제가 가르치는 중고등부 아이들이 끊임 없이 질문합니다. 학교에서는 우주의 역사가 50억년이라고 하는데, 왜 성경에서는 6일만에 다 창조하셨어요? "응. 하나님의 시간, 년수는 우리의 것과 달라."  하나님이 아담이 선악과 따먹을 줄 모르셨어요?  "어! 당연히 아셨겠지? 하나님이 모르실 리가 있어? 그래도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에 감사해야해." 아담의 아들 셋은 누구와 결혼했어요? 세상에 아담과 이브, 그리고 가인 밖에 없을텐데? " 응! 성경에 아담과 이브가 낳은 자식 몇명만 이름을 써놔서 그렇지, 사실은 굉장히 오랫동안 많이 낳아서 자식들끼리 결혼한거야."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와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가 왜 달라요? "응! 히브리 사람들 이름이 두개인 사람이 많잖아!" 그런데 이름만 틀리는 것이 아니라, 대수도 많이 차이나는데요? "응. 한쪽은 올라가다가 엄마쪽 족보로 가고, 한쪽은 올라가다가 아버지쪽 족보로 가서 그래. 그리고 좀 빼먹을 수도 있지 뭐." 에이 성경은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요.하나님이 쓰신건데? "지금은 그냥 외워둬. 나중에 크면 다 알게되니까." 여러분도 아이들의 질문에 이런 정도로 밖에 대답하실 수 없는 것은 아닐까요? 생각해 보세요! 과연 어떻게 대답하실 겁니까?

신앙인 중에서 과학을 하시는 분들이 모여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대홍수가 있었다는 증거를 찾아내고선, 노아의 홍수는 사실이었다 라고 주장합니다. 중동의 사막에서 오래된 탑의 조각을 찾아내고는 바벨탑의 사건이 사실이었다 고 주장하죠. 창조론을 입증하는 증거들을 제시하며, 성경의 창조가 맞다고 주장합니다. 도대체 무슨 논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측면을 살펴보려 합니다. 성경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이상(?)한가 하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라는 욥기에 나오는 말씀이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인 것처럼, 온 나라에 퍼져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욥의 친구 빌닷은 욥을 위로하는 중에, 네가 정직하게 회개하고 다시 시작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실거야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적어놓은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보면 알지만, 좋은 마음으로만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다. 애초에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충고할 여건들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욥이 너무 잘살아서, 하나님과 사탄이 시험을 하게 된 것인데, 욥의 친구들은 시기와 부러움의 대상이던, 욥이, 그렇게도 바른 이야기만 하던 욥이 잘못되니까, '네가 잘못해서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이니, 괴로워하지 말고 제대로 회개하라!' 고 이야기하러 온 것이었으니까요. 이런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비꼬는 이야기가 축복의 말씀이라고 집집마다 걸어놓는 것을 보면서, 크리스챤의 성경에 대한 '이해' 를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요셉을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가 만약 요셉에게 "나의 아름다운자여! 내게 순종하면 부귀와 영화가 네것이리라!" 라고 말했다고 봅시다. 성경에 있는 말씀이니, 축복의 말씀이라고 붙이고 다니지 않을까요?

아마도 1999년 쯤이라고 기억합니다. 저는 소망교회 교인은 아니지만, 극동방송을 통해서 곽선희 목사님의 설교를 매주 듣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깜짝 놀랄만한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본인은 성서에 대해 유기체적 영감설을 따릅니다."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주일 설교에서 밝힐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과감하게도 곽목사님은 그렇게 천명을 하신 것입니다. 저는 장로교인이 아니라 총신쪽의 신학노선을 잘은 모르지만, 목회자라면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 축자영감설을 거부한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도 설교를 듣는 사람 중에 '유기체적 영감설' 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판단하고,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철저하게 유기체적 영감설을 바탕으로 성경을 봅니다. 결국 성경엔 저작 시기가 가진 시대적 한계, 과학적 한계 뿐 아니라, 저자 개인이 가진 여러가지 한계가 드러나 있습니다. 성경의 글짜가 맞다 틀리다를 볼 것이 아니라, 저자의 영성을, 그가 느끼고 만난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 모세가 창조이야기를 어떻게 알고 잘쓰겠습니까? 우리가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을 어떻게 글로 옮겨놓을 수 있겠습니까?  마태와 마가, 누가, 요한이 같은 자리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토씨하나까지 외우고 정확히 쓰겠습니까? 어떻게 똑같은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바울이 자신이 여기저기에 쓴 편지들이 모두 모여져서 성경이 될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럴줄 알았으면 좀더 잘 썼겠죠!

히브리어로 쓰여진 구약을 디아스포라를 맞은 유대인들은 헬라어로 번역해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각 지파에서 몇명(아마도 6명)씩 차출하여 72명이 히브리어로 된 39권의 Scriptures 를 헬라어로 번역합니다. 번역하면서, 후에 외경으로 분류된 9권을 더 붙여서 48권의 '70인역' 을 만들어 냅니다. 100년이 걸렸다고 하죠! 예수님이나, 바울, 베드로 등이 지칭하는 성경이란 이것들을 말합니다. AD 90년에 있은 얌니아 회의에서 구약을 39권으로 선언했고, 이후 325(?)년에 니케아에서 신약을 27권으로 확정하고, 397년의 카로타고 회의에서 선포합니다. 이때부터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됩니다. 1402년에 교황의 명에 따라 제롬이 모든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합니다. 1522년9월엔 마르틴 루터가 신약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1604년에 영국왕 제임스의 명에 따라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King James Version (AV)이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참 대단한 성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문에 최대한 충실하면서도, 확실한 신앙적 원칙을 가 가지고, 라틴 벌게이트에 없는 일곱절의 예수님의 말씀 들을 맞추어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1911년에 대한성서공회에서 개역한글성경이 번역출간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911년에 개역한글성경을 만들어 내신 분들에게 경이를 표합니다. 이 시절에 어떻게 라틴어와 히브리어를 번역하여 한글로 성경을 완간할 수 있었을까? 한마디로 한국민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1935년과 1961년에 개정되면서 1세기 동안 한국인의 신앙의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뜬금 없이 1998년에 '개역개정' 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한글성경이 출간됩니다. 대한성서공회가 주동이 되어 각 교단 원로와 각 신학대학 총장을 동원하여 새로운 성경을 출간합니다. 나오자마자 장로교단을 중심으로 해서 대형교회들은 성경을 바꿉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2011년에 개역한글에 대한 특허가 만료되기 때문에, 성서공회가 급하게 새로운 성경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었다네요. 교계신문 기사들을 보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무시하고 '개악' 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성경책이 출판됩니다. 발간된 지 10년이 지나지 않아 4차의 개정이 이루어질 정도로 준비가 되지 않은 성경이죠. 2011년인가요? 예장 합동측은 총회에서 개역개정이 800여곳의 개악이 있고, 오류가 많아서, '개역한글' 을 기본으로 채택하기로 한다고 공식발표를 했습니다. 바로 이런 성경을 한자 한자 하나님이 직접 쓰신 것처럼, 한자의 오류도 없고 영원히 지켜질 것처럼 가르치셔야 하는, 가르치시려고 하는 목사님들께 애도를 표하고 싶습니다.

저는 감리교인이고 앞으로도 감리교인이길 원합니다. 물론 감리교라고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 후반에 모든 감리교회는 UMC 가 정한 '감리교 교리적 선언' 을 매월 한번씩 예배시간에 교독하기로 정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교리적선언에서 성경에 대해 명쾌하게 규정합니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신앙과 실행에 충분한 표준이 됨을 믿으며"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성경에 하나님 말씀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진리의 근원이시지만, 성경에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 다 진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충분하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넘어서 계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역사하시지만, 세상을 통해서 더 많이 역사하십니다. 혹시라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외하신다면, 성경을 하나님이 쓰신 것이라고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직접 쓰셨다면 이정도의 책을 쓰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직접 쓰셨다면, 라틴어로도 직접 쓰셔야 할 것이고, 영어로도, 한국어로도 직접 쓰셔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쓴 요한이나 바울이 어떤 개인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성경을 결정한 사람들, 또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도 어떤 의도를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써놓고, 하나님이 쓰신 것처럼 하여, 이익을 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에서 내 주장이나, 이익에 관계되는 부분만을 꺼내어서 도구로 쓰고 있는 지도 모르렜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 그리고 교회, 자기의 직분과 명예를 위해서 성경을 꼭 지켜야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혹시 하나님이 가라지로 구별할까 두렵습니다. 하나님을 성경 안에 가둬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 가둬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조금 더 바란다면, 하나님을 예수님을 통해서만 바라보시지 않길 바랍니다.

성경을 넘어섭시다 !! 그래야 하나님이 완전하시고, 그분이 만드신 세상이 완벽하게 운영되고 있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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