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관점으로 계속 글을 쓰게 됩니다. 오늘은 좀 거칠게 써보려고 합니다. 로마서 13장1절에 나오는 이 말씀은 참 좋은(?) 말씀입니다. 약은 사람들이 써먹기 좋은 말씀이라는 것이죠.
바울은 로마교회에 가기 전에 이 글을 썼다고 알고 있습니다. 바울서신을 보면, 바울은 참 생각이 많고, 영리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반면에 겁이 많았던 것 같구요. 베드로나 대부분의 다른 제자들은 성령에 사로잡힌 순간부터 일관되게, 담대하게 살다가 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 이후로도, 많이 걱정하며, 다른 교회지도자들과 대립하며, 논리로서, 말로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다른 사람을 공격하며 선교를 합니다. 로마에 가면서는 권력으로부터 핍박을 받을 것이, 재판정에 서야할 것이 겁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13장7절까지를 보면, 권력에 순종하고, 관세와 조세를 잘 바쳐야 한다고 썼습니다. 이 말이 크리스챤은 정직하게 세금 다 내고 사업해야 한다고 하는 말일까요? 아니겠죠! 로마정권과 잘 지내야 하는 명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로마권력과 부딪히지 않아야 선교를 잘할 수 있다고 해도 좋을 겁니다. 만약에 바울이 "로마정권은 하나님이 세우신 정권입니다. 순종하시고, 이 정권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라고 하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도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로부터 몰매를 맞고, 축출당했겠죠? 그래서 거의 같은 이야기를 교묘하게 자신의 서신 뒷부분에 표현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른 누가 가진 권세가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일까? 하며 분명히 판단할 것입니다. 이해득실을 따질 것이고, 편리와 불편을 고려할 것입니다. 그리고 맞서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되면,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이니까!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 가져다 쓰는 좋은 도구죠. 하지만, 근본적으로 시기심이 충만한 우리 인간이 왠만하면 남의 권세를 인정하고 싶겠습니까? 인정하지 않아야 자신에게 유리하고, 인정 안해도 크게 위협을 느끼지 않을 권세에 대해서는 망설임 없이 다른 잦대를 가져다 댈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까뭉개고 싶어할 것입니다.
오히려 권세에 굴복하는 것은 비겁하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거의 30년 전쯤의 일입니다. 제가 살던 서울의 천호동이란 곳은 우범지대로 소문난 곳이었습니다. 당시 길거리 노상강도와 여자를 폭행하고 납치해가는 인신매매 사건이 종종 있었습니다. 어느날 밤 12시쯤에 ( 놀러나가는 길이었습니다.), 갑자기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사내의 고함과 상점 철문에 몸이 부딪히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사내 둘과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한 사내가 주저앉아있는 여자를 발로 차고 있었습니다. 저는 인신매매범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조금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너 세명이 있는 곳으로 가자, 여자를 발로 차고 있던 남자가 저 들으라는 듯이 소리쳤습니다. "너 이년아 지금 어디서 오는거야! 버젓히 서방 놔두고 바람을 펴!" 여자는 저를 보자마자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라고 애원했습니다. 옆에 서 있던 다른 남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형씨! 남의 가정일에 신경쓰지 말고 가던길이나 가쇼! 괜히 험한 꼴 당하지 말고" 전형적인 인신매매범의 수법이었습니다. 저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이봐 형씨들! 어느 동네에서 왔어?" 두 남자가 주춤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남자들을 신경쓰지도 않는다는 듯한 여유로운 자세로 쓰러져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앉았습니다. 그리고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아가씨! 이 사람들 알아?" 여자는 당연히 처음보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앉은 체로 고개를 돌려서 두 남자를 쳐다보았습니다. 한 남자가 황급하게 말했습니다. "야! 이년아 너 OO 맞잖아!" 여자는 당연히 아니라고 대답했죠. 남자는 머쑥한 표정을 지으며 내 눈치를 살피더니, 자기가 어두워서 잘못보고 실수를 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죄송하다고 하고는 줄행랑을 놓았습니다. 여자는 혼자 일어서지도 못해서 일으켜 주었고, 잠시 부축해 주었더니 얼마 후에는 천천히 걸을 수 있었습니다. 십분 정도 거리에 있는 집에 바래다주고, 돌아왔습니다. "정말 잘했죠?" 하지만 이런 일은 단한번 있었을 뿐입니다. 저는 의협심이 넘치고, 싸움도 잘하는 영화 속의 주인공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계산이 섰기 때문에 나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동네인데다가, 동네에서 한가닥하는 사람들은 거의 알고 있고, 어떤 다른 동네 양아치도 천호동에서는 함부로 설쳐대지 않기 때문에, 제가 천호동에서 한가닥 하는 사람인 것 처럼 여유를 부리면, 먹힐 것이라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얼굴이 험상궂지 않은 것이 흠이지만, 대학교때부터 지금까지 183센티미터에 88킬로그램으로 건장한 체격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보지는 않아서 가끔 덩치 덕을 보곤 했습니다.
이 일이 있고 얼마 후에, 저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치욕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네살이 많은 꽤 악명높은 동네 양아치가 있었는데, 저와는 악연인지? 볼 때마다 서로간에 인상을 쓰고 견제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제가 기세를 세우고 다니면 그 친구가 슬쩍 피하곤 하는데, 소위 깜빵이란 곳에만 갔다가 오면, 정말 덩치도 산만해지고, 기세가 넘쳐서 한두달 간은 그 친구의 눈치를 살피며 다녀야 했습니다. 사건이 있었던 그 때도 그 친구의 기세가 등등했던 시기였었고, 또 만만치 않은 다른 양아치 한명이 같이 있는데, 멋도 모르고 저와 함께 가던 순진한 제 친구가 제가 잠깐 아는 사람을 만난 사이에 그 양아치 두명 앞에까지 다가간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제 친구가 저의 일행임을 알아보고는 일부러 시비를 걸었고, 윽박지르며 따귀를 때리고 있었습니다. 순전히 제 친구이기 때문에 맞고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했는 줄 아세요? 뛰어가서 구해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일부러 만난 사람을 붙들고 상황을 못본 척하며 시간을 끌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제 친구를 보내주고, 유유히 제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저는 전혀 모르는 척하며 아는 사람과 인사하고 그 친구들을 향해 천천히 마주 걸어갔습니다. 그 친구들은 제가 겁을 먹고 모른 체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 안다는 듯이 만면에 비웃음을 머금으며 저를 바라보더니만, 제가 막 스쳐지나갈 때, 한마디 던졌습니다. "비영신!" 저는 멈추지도, 돌아서지도 않았고, 못들은 척하며 지나쳤습니다. 제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며, 집으로 걸어가는데, 1분, 2분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속에서 열불이 났습니다. 친구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제 자신에 대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저녁에 단단히 준비를 하고, 그 친구가 자주 다니는 길로 나갔습니다. 싸우면 이길 자신은 있었지만, 제가 친하게 지내는 형들의 친구이고, 또 제 친구들의 선배이고... 관계가 얽혀있어서 막상 싸울 수도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래도 부딪히게 되면 무조건 싸울 것으로 마음 먹었습니다. 천호동에서 제일 번화한 길, 멀리 그 친구가 보였습니다. 키는 저와 비슷하고 몸무게는 훨씬 더 나가기 때문에 가운데 행인들이 무수히 있었지만, 멀리서도 서로를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찾아나온 것임을 느꼈는지 그친구는 저를 피해서 황급히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그냥 그 정도로 위안을 삼고 말았습니다. 저는 싸워서 이기더라도 뒷일이 감당이 안되었고, 그 친구는 혹시라도 제게 지면 정말 큰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싸울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그때의 비겁함은 평생 잊혀지지 않고 제게 자극을 주었습니다. 다시는 비겁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죽을지언정 비겁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 후로 비겁한 적이 없었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단 한명이라도 저를 비겁하다고 볼 상황일 것 같으면, 죽기를 각오하고 용기를 냈습니다. 반면에 내가 여기서 비겁하더라도 나와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판단이 되면, 가끔 비겁한 길을 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용감해지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 본성보다는 훨씬 더 용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겁 많고, 잔머리를 잘 굴리는 사람이지만 말입니다. 제가 이글과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제 경험담을 늘어놓은 것은 제가 바울에게서 느끼는 느낌이 제 경험담들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6장12절에서 바울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 로마서와는 너무 다른 어조로 세상 권세와 주관자들과 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13장에서 바울이 주장한 바가 기독교인들이 기켜야 할 금과옥조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세상만물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나도, 남도, 길거리에 돌 하나도. 그러니 권세도 당연히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겠죠. 그렇지만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온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그것에 순종해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판단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양심에 따라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권세는 악하다 또는 선하다. 바르다 또는 바르지 못하다라고 판단해야 합니다. 선하고 바르다면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고, 악하거나 바르지 못하다면, 맞서야 합니다. 맞설 용기가 없다면, 맞서는 사람 편에 서기라도 하시고, 그것도 어렵다면 기도라도 하십시요. 복지부동으로 있어서 바르지 못한 권세에 협조하는 사람으로 계산되기 보다는 때로는 떠나는 것이 지혜로울 수 있습니다.
성경 속에 나오는 왕의 70% 이상이 악한 왕입니다. 대제사장 중에서도 악한 대제사장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악한 왕과 악한 대제사장을 도우라고 하시겠습니까? 신사참배를 한 한경직 목사님이나, 로마권력에 순종하라고 편지를 쓴, 바울을 비난할 자격도 없고, 비난할 의도도 없습니다. 단지 바울의 글을 자신의 비겁함을 정당화시키는 금과옥조로 사용하셨거나, 사용하시려고 하는 분들에게, 이제는 스스로 판단하시고, 판단에 대해서 책임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결론으로 두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지만, 무조건 순종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기에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근본적으로 나약하지만, 용감해지는, 담대해지는 연습을 통해서 용기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저도 영리하고, 잔머리 굴리고,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겁없는 것처럼 보이려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많은 연기를 하며, 연습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어느 시절에는 정말 겁없는 사람처럼 지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용감해지는 연습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용감하고 담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2013년 1월 31일 목요일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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