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8일 월요일

이세상과 저세상 (6) 자유

이 세상의 삶은 거의 모든 순간에라도 선택이 가능한 삶이지만, 저세상의 삶은 선택이 제한된 삶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절대 자유' 라는 것을 가질 수는 없지만, 얼마나 많은 자유를 가지는 지가 바로 그 사람의 가치인 것입니다. 물론 절대 자유는 창조주 한분 만이 가지고 계십니다.

저세상에서 가지는 자유의 정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자유가 지극히 제한된 환경을 바로 지옥이라고 부른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세상 삶에서 완전히 실패해서 심판대에서 최악의 평결을 받으면 뜨거운 곳에 가서 하루 종일을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지르며 살아야 할 것이고, 추운 곳에 가서 떨며 이를 갈며 살아야 할 것이고, 무서운 곳에 가서 한 없는 공포를 느끼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최악의 평결을 받은 사람에게는 '뛰며 비명 지르며, 도망다니는' 정도의 지극히 제한된 자유 만이 주어질 것입니다.

심판대에서 이보다 조금 더 자유가 주어지는 평결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이세상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잘못한 상황에 대해 반대로 받아가며 살아가야 하는 정도일 겁니다. 남을 많이 때린 사람은 남에게 맞는 공포와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평결을 받을 것이고, 남을 많이 괴롭힌 사람도 반대의 입장에서 선택도, 도망갈 길도 없이 괴롭힘을 당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남에게 챙피와 모욕을 주며 산 사람은 챙피와 모욕을 당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성적으로 남을 학대한 사람들은 남으로부터 성적학대를 받아야 할 겁니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말입니다.

이세상에서의 삶은 불확실 하기도 하고, 서로 간에 숨길 수도 있지만, 저세상에서의 삶은 모든 것이 드러나 있어서 아무 것도 숨기지 못합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점수와 처벌이 써있을 것이고, 이세상 삶에서 잘못한 것이 모두에게 백일하에 드러날 뿐더러, 숨을 곳도 없을 것입니다.

조금 더 자유가 주어지는 평결을 받으면 남을 위해 노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벌로 주어지는 노등은 자신이 이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어했던 노동일 겁니다. 남을 위해 종일토록 빨래를 해야 하는, 남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남을 위해 청소를 해야 하는 평결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렇게 남을 위해서 노동을 하면서도 평결 점수에 따라 각기 다른 휴식 시간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 보다 조금 나은 평결을 받은 사람들은 노동을 하더라도 피로도가 좀 덜한, 덜 싫어했던 노동을 할 것 같습니다. 휴식시간이 좀 넉넉히 주어질 수도 있겠구요.

이 보다 좀더 자유가 주어진다면 노동 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노동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일상 생활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노동을 통해서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겠지요.

조금 더 자유롭다면,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다니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마음껏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구요.

좀더 자유로울 수 있다면,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이런 류의 도움은 일시적인 것이고, 어떤 사람의 평결 점수나 받고 있는 대우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의 자유는 아닐 겁니다. 

그리고 좀더 자유롭다면 이세상을 볼 수 있고, 자신과 관계있는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남에게 덕을 베풀 수 있는 이 자유는 저세상에서 무한히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세상에서 쌓은 덕을 통해 얻은 점수를 사용하는 것이겠죠.

마지막으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다면, 더이상 윤회의 수레에 얽메이지 않고, 윤회를 벗어나 저세상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겠죠. 이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모든 사람은 정해진 때가 되면 이세상에 와야 하고, 이세상에서 생로병사를 겪으며, 희노애락 가운데 살아야 하고, 삶에서 조금이라도 실수를 해서 자신의 평결 점수를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저세상에서 망신스럽게 험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윤회를 벗어나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이 저세상 삶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보다 좀더 높은 점수를 가진 사람이 누리는 자유에 대해 부러울 수 밖에 없고, 그 덜가진 것에 대해 안타깝고 괴로울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따라서 이세상 삶이란 기회를 간절히 원할 겁니다.

저세상에서의 평결은 이세상 삶의 모든 것이 반영됩니다. 따라서 수십억의 인구가 있다 하더라도, 모두가 자기 만의 고유한 점수를 받고 저세상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세상에 오는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삶의 목표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높은 평결점수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모든 사람이 저세상에서의 기억을 잊은 체로 이세상의 삶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수백년을 참아가며 간절히 갈망하여 시작하게 된 이세상 삶을 만약에 저세상에서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살게 된다면 아마도 이세상이 오히려 천국이 될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관계로 이세상 삶을 낭비하거나, 오히려 점수를 잃고 마친다면 얼마나 한심하고 실망스러운 일일까요? 그것도 이세상에서 시작하는 그 자리를 본인이 선택해서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세를 한탄하고, 팔자를 원망하며 살다간다면 말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평결점수를 얻을 수 있을까요? 이세상에서 어떤 일을 해서는 안될까요? 비록 잊어버린 체 이세상에 온다 하더라도, 우리의 뇌는 알고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들을 수 있습니다.

부디 이세상에 왜 왔는지를 떠올리시고, 그에 따라 최선을 다하셔서 좋은 점수를 받으시길 !
최대한의 자유를 받아 누리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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