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참 믿기지 않는 관계들이 있다.
다윗과 요나단이 하나이고,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또 하나이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에 대해 간단히 말하려 한다.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예수님 보다 6개월 먼저 세상에 오셨다.
많은 사람들이 나아오고, 제자들이 따르고, 헤롯왕 조차 두려워서 어찌할 수 없는 참으로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말과 행동이 일치했음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광야에서 살며, 최선을 다해서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외쳤다.
예수가 자신에게로 오자, 예수가 누구이심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을 숭배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예수의 신을 풀기에도 부족한 존재라고 밝혔다. 예수에게 세례를 베풀며 그는 감격했을 것이다. 그런 요한이기에 예수님도 자신을 맡겼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세례를 줄 사람을 선택하셨을 것이다. 자신이 인정하고 자신을 인정할 사람을 찾은 것이다. 요한이 세례를 베풀었다고 해서, 둘의 관계가 세례로 형성되지 않았다. 자신이 세례를 준 사람을 자신의 주인으로 섬긴 것과 마찬가지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다. 자신의 가까운 제자들을 주님께 보내어 섬기며, 배우게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묻게 하셨다. “오실 그분이 당신이시니이까?” 확인이 되자, 자신의 모든 제자와 자신을 섬기는 자들을 예수에게 보내고, 자신의 삶의 목적을 이루고 삶을 마쳤다. 아마도 굉장히 기뻐하며…
아마도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가장 귀한 것을 주셨을 것이다. 어쩌면 유일하게 예수님과 친구의 자격이 있는 사람일 지도 모른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만들지는 못한다. 요나단이 다윗을 만들지도 못한다. 반대로 다윗도 요나단을 만들지 못하고, 예수님도 세례 요한을 만들지 못한다.
세상을 살면서 나는 요나단을 꿈꿔본다. 세례 요한을 꿈꿔본다.
내 삶의 기록이 요나단과 같이 확실하게, 세례 요한과 같이 간결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행복한 상상에 빠져 본다.
그리고 요나단과 같이, 세례 요한과 같이 살다 갈 수 없다면, 좀 더 용기내여 다윗을 꿈꿔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 처럼 살다 가기를 꿈꿔본다.
2009년 11월 2일 월요일
예수님과 세례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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