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일 월요일

하나님의 절대공평 1

하나님은 Totally, Perfectly 공평하시다.
인간과 우주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한 눈아래 보고 계신다. 그리고 그 우주만물, 삼라만상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운영하시면서 그 안에서 당신의 형상 대로 만드신 우리 인간을 시작부터 끝까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마음 속부터 숨결 하나, 말 한마디까지 지켜보고, 주관하신다.
우리 인간은 자기를 잘 포장하고, 합리화시킨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절대 공평하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삶이 이생 뿐이면 우리는 불공평한 어떤 단면을 볼 수도 있을 것이지만, 우리는 이땅에서 살면서 다가올 세상을 준비하는 사람들이기에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공평에 의지하면 된다.
공평한 하나님을 보강하는 하나의 원칙은 하나님은 노력한 만큼의 열매를 반드시 주신다는 것이다. 불순한 의도만 아니라면, 어디에서 무엇에 땀을 흘렸느냐?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냥 흘린 땀 만큼만 하나님은 결과를 주신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우리를 애타게 하는 것은 주시기는 주시되 언제 주시는 지에 대해 우리가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이 생각하시기에 제일 좋은 때에, 제일 적합한 것으로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과가 빨리 안나온다고 초조해 하지도 말고, 메달리지도 말고, 담담하게 감사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어린 시절 우리는 학교에서 시험을 보면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어떤 아이는 머리가 좋아서 하루에 한시간도 공부를 안하면서도 늘 1등을 놓치지 않고, 어떤 아이는 하루에 대여섯 시간을 죽어라고 공부하는 데도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다. 이때 공평하신 하나님은 머리가 좋아서 아주 좋은 성적을 받는 아이에게 노력한 것의 다섯배 정도의 결과를 주시면서 이 아이가 어떻게 처신하나? 를 지켜보신다. 아마도 그 아이는 내가 별로 노력을 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주셨으니, 어떤 스페셜한 감사를 드려야 할까? 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자기의 머리를 과신하게 되고, 자만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반대로 하루에 대여섯 시간을 노력하면서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아이는 좌절하거나 주저앉을 확률이 클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노력한 크레딧이 머지 않아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계속 노력하는 아이들은 정말 많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가장 당면하여 있는 경제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은 쉽게 돈을 벌고, 어떤 사람은 힘들게 노력하여도 돈이 벌리지 않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서 노력한다는 것은 나쁜 의도나, 남에게 피해를 줄 의도로 시작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어떤 사람은 시간 당 $30 을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시간 당 $10 을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시간 당 $1,000을 벌기도 한다. 먼저 시간 당 $1,000 이상을 버는 정말 대단한 기업가의 경우,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어서 자신의 노동력은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이고, $1,000 정도가 적당하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경우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시험하기 위해서 Lotto 를 맞게 해주신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를 모르고 본인의 능력으로 로또를 맞은 것으로 착각해서, 항상 Lotto 를 맞아가며 살아갈 것으로 착각한다. 이런 착각을 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주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 그리고 그 결말은 어떠할까? 미국 내의 직업 중에서 가장 연봉이 높은 직업이 의사라고 보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의 평균 연봉이 $150,000 정도였다. 이들은 의사라는 직업을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서 노력했다. 그들의 노동력이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혹시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업에서 자신의 수입이 의사들의 평균 수입보다 많은 경우, 이는 무조건 돌아 봐야 한다.
자신을 잘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노력한 것보다 더 많이 주신다고 생각이 들면, 하나님께 여쭈어야 한다. “왜 더 많이 주시나요? 혹시 주시고 어떻게 쓰나 테스트 하시나요?” 더 주신 것, 어떻게 쓰는 것이 가장 잘 쓰는 것일까? 고민해야 한다. 더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기’ 가 될 확률이 높고, 참 좋지 않은 상황이다. 더 주신 것을 잘 쓰기는 정말 어렵기 때문이고, 잘 써야 겨우 본전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하나님이 우리가 노력한 것 보다, 조금, 아니 많이 덜 주신다는 생각이 들면 감사하면 된다. 우리는 잘못될 확률이 적다. 조금 덜 주시는 것에 대해, 즐겁게 저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고, 원망하거나, 자신의 가치가 굉장히 대단하다고 착각하지만 않으면 된다. 예수님과, 하나님과 가까와지기 좋은 시기이고, 우리를 성장시켜 준다.
하나님의 절대공평을 믿는다면, 노력하며 살고 있는 우리는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걱정한다면 하나님이 공평하다고 믿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평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공평을 믿는다면 요행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운이 좋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Lotto에 맞은 사람에게 “운이 좋다.” 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잘 모르는 것이다. 이들의 대다수는, 아니 절대다수는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 멸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지는 첫발을 딛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세상이 너무 재미 없어지는가? 나는 아니다. 나는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해, 내 행동에 대해 하나님이 노력한 만큼, 심은 만큼 주실 것이라는 것은 확실히 안다. 다만, 어떻게 주시는지? 언제 주시는지? 어떤 것으로 주시는지? 기다리며, 맛보며,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 글을 두번에 나눠쓰다 보니, 처음 쓸 때의 동기와 이어서 쓸 때의 느낌이 달라서 이상한데, 그냥 싣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절대공평 2 를 쓰며 조정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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