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9일 수요일

(교)믿지 않고 돌아가신

가까운 성도의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는데, 신앙을 갖지 않으신 상태였습니다. 딸과 사위는 얼마 전부터 신앙을 갖게 되었고,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봉사도 하려 하는 아주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슬픔에 젖어 어쩔줄 몰라할 것 같아, 어떻게 위로하나 하는 마음으로 추도예배에 갔었는데 의외로 늠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조카 같은 정을 느끼는 그 자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써보았습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 몇가지를 다시 한번 자매에게 알려주고자 글을 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실현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구원은 이미 만민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알리는 것이지요. 자매가 아버님께 구원을 알리고, 또,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을 전하는 데에 얼만큼 진도가 나갔는지 알 수 없지만, 구원은 예수님으로 인해 이미 아버님께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버님은 살아 오신 삶을 통해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수도, 책망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아버님의 구원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지요.
둘째로, 아버님의 삶에 대한 평가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버님의 삶의 평가는 자식의 삶을 통해서 평가가 끝이 납니다. 자매의 삶이, 혹 아버님이 못다 하신 선한 일을 마무리 짓는 삶이 되어야 겠습니다. 아버님의 돌아가심을 통해서 자매가 가족과 이웃에게 구원을 알리는 일을 미루지 않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고, 아버님을 위해서 더욱 더 이웃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교회는 다닌다고 하면서 세상의 나쁜 일은 다 하는 사람과,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이웃에게 헌신적으로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사는 사람 중에 누가 천국에 가겠느냐? 입니다.
근본적인 제 생각을 이야기 한다면, 교회에 다닌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는 교회에 출석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느냐? 아니냐? 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고, 우리 몸에는 하나님이 심어놓으신 유전자가 있어서, 이 유전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요구하십니다. 당신의 뜻을 따르기를, 양심에 따라 살기를 요구하시고, 더 나아가서 자기 자신보다 이웃을 사랑하기까지 요구하십니다. 이 요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정말 근본적인 요구이십니다. 어느 교회에 나가라! 어떤 종교를 선택하라! 어떤 길을 가는 것이 맞느냐? 이런 우리의 지식이나, 사상, 관념에 의해 선택되어지는 것이 아닌 인간의 속에 자연스럽게, 근본적으로 내재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회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틀림이 없이 우리 속에서 명령하시는 만드신 분의 요구이신 것입니다.
내친 김에 근본적인 것 한가지를 더 언급하고자 합니다. 바로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르는 것인지? 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믿어야지만 구원에 이른다. 예수님의 구원의 사실은 이미 이루어진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위로를 얻고, 더 나은 생활로 가기 위해 만든 상상이나, 설정이 아닙니다. 이미 주어진 것이지요. 우리는 이 이루어진 사실을 이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서 그들로 하여금 구원받은 기쁨을 누리며, 감사함으로 살게 하는 것이죠. 그들에게 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랑의 실천일 것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이를 모르고 살다 가신 분들도 하늘 나라에 가시면 다 알게 될 것입니다. “아! 내가 구원받았었는데… 이를 모르고 불안하게,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구나!” 예수님의 구원을, 그 십자가의 사랑을 알게 되면, 믿게 되면, 우리의 삶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기쁨으로, 소망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다.
오히려 알고도 행하지 않는 우리를 예수님은 크게 책망하실 것 같습니다. “네가 그런 기쁨을 누리기까지 나를 포함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렸는데, 너는 이기적으로
너만 기쁘고, 너희 가족만 즐겁게 살아가고 있느냐!” 구원은 내가 믿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미 주신 것입니다.
아주 좋은 예가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섬에서 2차 대전이 끝난 20~30년 뒤에도 이를 모르고, 굴에서 숨어 산 일본군 패잔병들이 많았습니다. 이미 전쟁은 끝났고, 고향에 돌아가면 발전된 조국이, 가족이 기다리고 있을텐데, 이를 모르는 그들은 사람을 피해가며, 원시적인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몰랐기 때문입니다. 구원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모든 사람이 구원 받았는데, 이를 아는 사람들은 구원받은 삶을 사는 것이고, 모르는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구원은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글을 맺으려니 한가지 글이 더 떠오르네요.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누가 왜 이런 글을 남겼을까? 본인이 구원받았음을 확신하고, 구원받은 삶을 살고 있는데, 꼭 말로 해야 구원에 이르는지? 입으로 시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가게 하고 싶은 마음이 반영된 글이라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보면 군중심리를 이용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구요. 구원받은 사람의 숫자를 늘려가야 하는 선교사나, 전도자, 사역자의 입장에서 보면 필요한 조치라는 생각도 듭니다. 입으로 이야기 하면, 마음도 따라 움직이고, 마음 속에 좀더 확신을 심어줘서 구원받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게 해주려는 좋은 마음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입으로 시인하지 않아도 구원은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구원받은 기쁨을 누리며, 또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의무감을 느끼며 하루 하루를 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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