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9일 수요일

두려움에 대하여

무엇이 두려운가?
어렸을 때 나의 첫 두려움은 어두움이었다.
밤이 되면 화장실에 가기가 무서웠다. 화장실 천장을 올려다보면 안될 것 같고, 화장실 밑에서는 빨간 손이 나올 것 같았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살던 동네는 6.25 때 국군통신대가 있었다고 해서 통신대산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부서진 건물이 조금 남아있었다. 그 통신대산은 공동묘지로 사용되고 있었다. 산이라고 해봐야 소나무가 다합쳐서 100그루 정도 될까? 봉분도 그다지 많지는 않은 그냥 묘지가 많은 민둥산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통신대에서 국군이 몰살했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들을 하며, 밤이면 귀신이 나오는 곳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한시간 거리의 국민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늦게 들어오다가 깜박 졸기라도 하면 종점에 내리게 되는데, 종점에서 우리 집으로 걸어오려면 30분 길에 그 통신대 산을 통과해야 했다. 정말 무서웠다. 안그랬으면 좋았겠지만, 놀기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이런 일을 가끔 일어났다. 버스 종점에서 그 산까지 10분 정도 걸으면 인가가 끝이 난다. 산 길은 세사람 정도가 함께 걸을 수 있는 좁지 않은 길이어서, 마주치는 사람과 부담 없이 지나갈 수 있는 정도였다. 산길을 지나는 데에 10분 정도이고, 그 다음으로는 넓은 길을 통해 외딴 교회를 지나서 동네로 가느냐, 오솔길로 언덕을 넘어 동네로 들어가느냐? 의 선택을 하면 된다. 통신대 산을 넘지 않고, 찻길로 가다가 원주민 동네를 통과하여 오는 길도 있었는데, 20여 분은 더 돌아가야 했다. 찻길도 어둡고, 원주민 동네도 2~30집이 사는 아주 작은 동네인데다가 칙칙한 느낌이 들고, 또 개들이 짖어대서 나는 이용할 생각도 안하지만, 통신대 산길을 넘기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이용하곤 하던 길이었다. 한 스무번 정도 밤에 이길을 넘은 것 같은데, 그 중에 한 서너번은 보름달이 정말 훤하게 비췄기 때문에 즐겁게 넘었고, 두세번은 조금 챙피하지만 동네에서 서성거리다가 넘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얼른 뒤따라 넘어갔고, 나머지는 거의 공포에 떨며 넘어갔다.

내가 넘어가는데, 뒤따르는 발자국 소리가 나도 무섭고, 아무도 없어도 무섭고, 아주 이따금씩 반대편에서 사람이 와도 귀신 아닌가? 해서 무섭다. 한 두세번은 내가 본 것이 귀신이라고 확신하게 하는 상황들도 있었다. 한번은 분명히 앞에서 나이든 부부가 작은 아이를 데리고 맞은 편에서 와서 스쳐지나 갔는데, 지나고 나서 기척이 없다 싶어 뒤돌아 보니 아무도 없었다. 산의 중간 쯤이었는데, 겁이 나서 죽어라고 뛰었다. 뛴 시간은 한 1분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내리막 길이었기 때문에 더 빨랐을 것이다. 식은 땀이 나고… 어쨌든 귀신(?)은 따라오지 않았따. 한번은 긴장하며 산을 넘고 있는데, 뒤에서 두런 두런 소리가 났다. 남, 녀의 소리여서 별 신경쓰지 않고 넘다가 보니, 소리가 끊겼다. 원래 잘 뒤돌아보지 않지만, 이상해서 뒤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물론 또 정신없이 도망쳤다. 이후에도 한두번 비슷한 상황들이 있었는데, 더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나는 묘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 겁이 많고, 조심성이 많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나 셋과 한집에서 자라다보니 여성스러워질 확률도 높았을 것인데, 반대로 국민학교 1학년 정도부터 남자다우려고 노력했다. 누가 귀엽다, 예쁘게 생겼다고 말하면 남자에게 멋있다고 해야지!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겁이 많은 것을 남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저건 위험한데! 라고 생각되는 짓의 최전방에는 항상 내가 있었다. 팔당으로부터 서울로 들어오는 4만볼트의 고압철탑에 누가 높이 올라가나? 하는 놀이를 하면 다른 아이들은 절반정도 올라가면, 나는 맨끝까지 올라갔다. 누가 높은 데서 뛰어내리나? 하면 당연히 내가 가장 높은 나무에서 뛰어내렸고, 나무에 눈가를 찢겨서 지금도 흉터가 있다. 국민학교 때 아이들과 놀러다니며 겁없이 뱀도 잘 잡았다. 나 때문에 우리 동네 아이들은 뱀을 아주 쉽게 잡았다.

겁이 나서 잔뜩 긴장하고 있다보면, 속에서 부화가 솟았다. “사내 자식이 이딴 거에 겁을 먹어!” 그러고 나면 완전히 막가는 사람이 된다. 내 성격이 어떤 지를 잘 보여주는 예를 하나 들어보면, 대학원 때, 경기도 가평의 용소골이라는 곳으로 아주 친한 친구, 후배 해서 대여섯명이 놀러갔다. 작은 폭포가 있는 물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며 놀았는데, 모두 수영을 잘하는 편이었다. 한 3미터 정도의 바위에서 폭포가 떨어지는데, 바로 밑은 정말 까만 색이었고, 깊어 보였다. 바위 위에서 다이빙을 하며 물속 깊이 들어가면서 놀았는데, 갑자기 친구 하나가 물안경을 가지고 와서 왜 이렇게 까만가를 보고 싶다면서 중간 쯤에서 놀고 있는 우리를 지나 폭포 밑으로 수영을 해갔다. 물이 까만 부분은 우리들이 있는 곳에서 10미터 정도 밖에 안되는 거리였는데, 그 친구는 까만 부분에 도착하자 마자, 몸이 반사적으로 튕기더니 우리 쪽을 향해서 정신 없이 수영을 해왔다. 그 모습이 얼마나 웃겼던지 우리는 박수를 치며 놀리며 웃었는데, 그 친구의 말은 죽을 것 같더라는 것이다. 겁 없다고 자신하는 다른 한 친구가 놀리며 물안경을 뺏더니 폭포쪽으로 수영을 해갔다. 한 열번 정도 저어 까만부분 근처에 가더니 먼저번 친구와 거의 같은 몸짓을 했다. 무섭고, 챙피하고 정신 없고… 정말 묘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겁이 났겠지만, 정말 겁이 없을 것 같은 후배 하나가 물안경을 받아들고 호기롭게 형들 왜그래요? 하는 표정으로 수영을 해갔다. 결과는 똑같았다. 이렇게 되면 보통 내가 갈 차례인데, 후배가 물안경을 건네주지 않았다. “형은 가면 안되요! 저기엔 뭔가 항거하면 안되는 것이 있는데, 형은 분명히 끝까지 갈 것이기 때문에, 형은 가서는 안되요!” 친구들도 모두 말렸다. 그들이 말린 데에는 나를 걱정하는 마음보다, 내가 갔다와서 자기들을 놀려댈까봐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나는 가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는 그 다음날도 그 까만 부분의 중심인 폭포에 가서 놀았고, 바위 위에서 뛰어내리며 까만 부분 깊이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물속을 살펴보려고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분명히 귀신을 봤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무서워하면서도 그 길을 스무번 가까이 갔던 것은 내 묘한 성격이 반영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귀신에 홀렸거나, 귀신을 이용하거나, 귀신을 쫒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귀신과 상당히 많이 마주쳤고,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겁이 엄청나게 많은 나로서는 귀신이 나올까봐 얼마나 무섭겠는가? 교회에서 혼자서 철야기도를 하거나, 산기도원에서 굴에서 혼자 기도할 때, 한 서너번에 한번 씩은 귀신의 징후가 느껴지는데, 귀신의 징후가 느껴지면 아예 빨리 기도를 끝내고 자리를 피하던지, 버텨보자 마음 먹고 버티다가 결국은 도망치던지, 끝까지 버텨서 이기던지, 거의 1/3 정도씩의 확률이었던 것 같다.
내가 귀신의 기운을 느끼는 사람인지? 아니면 귀신의 징조가 있다고 생각하는 내 조금 안정되지 못한 마음에 귀신이 틈을 타는지는 모르지만, 내 삶을 돌이키며 생각해보면, 조금은 기운을 느끼는 사람인 것 같다.

아니 중학교 때부터 영적인 존재에 대해서 경험하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귀신에 대해서 꽤 잘아는 사람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귀신은 존재하고, 귀신은 무섭고, 귀신은 힘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귀신도 하나님의 세상을 운영하는 법칙 안에 있는 한부분이라는 것이다. 특별한 경우 이 귀신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그것도 하나님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라고 보면 될 것이다.
혹시 혼란스러워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개념을 정리해 보면 – 물론 다 알아서 정리하는 것은 아니고 내 이야기의 편의를 위해서 임의로 정리할 뿐이다. - 사람들이 하나님의 길로 가는 것을 방해하는 존재를 사탄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사탄은 귀신을 이용하고, 이렇게 사탄에게 붙잡혀 완전히 사용되는 경우 악령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그리고 왜 생겨났는지? 언제까지 떠돌아 다닐지? 는 모르지만 혼령들이 있다. 이 혼령들을 귀신이나, 미신으로 부르고 싶다. 이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목적이라던지, 사탄의 의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안좋은 영향을 미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보내주시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영적 존재인 천사가 있다.

또 개중에는 우리가 성령을 통해서 힘을 얻듯이, 사탄을 통해서, 혼령들을 통해서 힘을 얻는 사람들도 있다. 현세에서 이들은 놀라운 일들을 한다. 당장은 큰 복을 받는 느낌도 들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할까?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당연히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가지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아버지가 바로 옆에서 다 살피고, 인도해주고 계신데, 아버지는 쳐다보지도 않고, 어디서 나쁜 짓 도맡아하는 양아치 놈을 따라 다니면서 빌붙어 살면 아버지가 어떤 마음이실까? 이런 귀신의 힘을 빌리는 사람들은 언뜻보면 사람을 돕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달콤할 수도 있지만, 노력의 결과가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아니다. 결국은 파멸로 이끄는 달콤함에 불과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모든 영적존재들은 하나님의 세상을 운영하는 법칙 안에 있는 존재들일 뿐이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통해서 모든 것을 바라봐야 하고, 해결해야 한다. 넓은 범위로 보면 사탄이던, 귀신이던 이 모든 존재들을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사용하고 계신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이런데 우리가 무얼 무서워할 것인가?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귀신이 무척 무섭다. 아마도 보지 않고, 모르는 사람보다 훨씬 더 부담스럽고 무서울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도 무섭다. 어두움도 무섭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어느 순간이 되면 무서움을 느낀다고 한다. 이들이 느끼는 무서움은 어떤 종류의 것일까? 안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일까? 괴한이던, 악령이던 어떤 것이 쳐들어와서 자신에게 피해를 입힐 것 같은 두려움일까? 자신이 존재가치가 없다고 느껴지는 과소망상일까? 아니면 실제로 악령의 소리가 들리거나, 악령을 느끼는 것일까?

나는 정말 겁이 많은 사람이고, 무서웠던 경험을 꽤 많이 한 사람이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어딜가도 편안하고, 하나도 겁이 안나는 때가 있다. 아마도 그때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을 때인 것 같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두려울 때가 많지만, 하나님이 바로 내 곁에 계심을 확실하게 느낄 때는 두렵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내가 가장 무서운 것은, 가장 두려운 것은, 이대로 살다가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나를 내쳐버릴 지 모른다고 느낄 때이다. 하나님이 내게서 관심을 거두신 것 아닌가? 하고 걱정할 때이다.

이 외의 다른 상황은 잠깐 내게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키고, 잠깐 걱정과 불안이 되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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