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8일 목요일

더 산다면

더 산다면 뭐가 있겠나?
오랜 만에 아주 좋은 날씨를 맛보며, 팰리세이즈 파크웨이를 달렸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될 만큼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 길이 하늘로 가는 길이라면 하고 기대해 보았습니다. 하나님! 가면 참 좋겠어요! 하고 기도해 보았다. 살아온 삶과 살아갈 삶. 5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충분히 보여주었지 않겠나? 시간이 더 주어진다고 해도 내가 얼마나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나? 별게 없겠지! 나에게서 나올 것이 무엇이 더 있겠는가?
조금이야 더 잘 살겠지? 하고 기대는 해 보지만, 언제는 잘 살겠다고 굳게 다짐하지 않았었나? 그래서 생각해 보면 ‘나로서는’ 지금 가나 10년 후에 가나 별 차이가 없다.
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 와이프에게 나는? 결혼 22년차에 나는 와이프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결혼 전 7년 간이 좋은 이미지를 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다지 준비하지 않은 내 프로포즈를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었다. 전혀 고생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와이프를 꽤나 힘들게 했다. 지금까지도. 경제적인 문제로 그만 고생시켜도 될 정도로, 충분히 고생시켰는데 언제 벗어날까? 한번도 사주지 못한 밍크 코트와 다이아 반지를 사줄 수 있을까? 사주고 싶다. 별게 아니지만.
우리 딸, 정연이와 아들, 준규에게 나는 무엇을 주었나? 애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 엄마와 아빠의 경제적인 궁핍이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하는 아빠의 말을 애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내 깨달음이 아이들의 삶에 얼마나 녹아들어갈 수 있을까? 내가 애들에게 줄 것이 더 있을까? 조금은 더 줄것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충분한 기회를 가졌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후회는 없다.
한국에 있는 언니와 매형들에게 조카에게 나는 어떤 의미일까? 그들에게 나는 아련한 아쉬움과 아픔일 것이다. 기둥이고 버팀목이 되어줄 것 같았던, 동생이 짐만 지운체 멀리 떠났다. 오히려 도와주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스스로의 문제들도 해결하기 어려우니 도와줄 수도 없다. 내가 그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들도 나에 대한 기대를 접어가고 있을 것이다. 장인, 장모님, 처남, 처제에게도 나는 거의 같은 의미일 것이다.
내 주변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나는 ‘악역’ 을 했다. 그것이 오히려 이땅에서 나의 삶에서의 중요한 한 가치이다. 그들을 힘들게 했고, 그래서 나는 힘들었다.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했을 일이기에, 그것이 즐거운 일이 아니기에, 나는 만족한다. 하지만 더 이상의 악역은 하고 싶지 않다.
성인이라고 할 대학교 시절부터 나와 가까이한 사람들, 선배, 친구 그리고 후배들. 그들은 내게 꽤 기대를 했을 것이다. 아니면 시기를 했을지도. 하지만 한국에서의 사업은 그들이 예상치 못하게, 아니면 바라던 대로 실패를 했다. 그리고 내가 갑작스럽게 미국으로 오고난 후, 그들은 막연하게 어떤 기대를 했을 것이다. 빠르면 한 3년, 아니면 5년 정도면 나타나지 않을까? 벌써 7년이 지나고 있다.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기대가 점점 사그러지고 있겠지! 이제 몇년만 더 지나면, 그들의 삶에서 내 존재는 전적으로 과거로만 남을 것이다.
내 지나온 삶에서 시간을 공유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그저 나쁜 기억, 좋은 기억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그들에게 해줄 것이 없다. 바뀔 것이 없고, 내 뜻대로 되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더 살던, 없어지던 그들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면 정말 아무 기대도 하지 말까? 아무 것도 바라지 말까?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하고 가야겠지! 그래서 그냥 이정도로 기도해 본다. 절반은 빨리 가고 싶은 마음으로, 나머지 절반은 뭔가 할 수 있다는 기대로.

하나님! 1년만 더 주시고, 1년만 지켜보시고, 나아지지 않으면 그냥 데려가시면 안될까요?
2010년 3월 17일, 아주 기분 좋은 날에 1년을 더 열심히 살아보기로 결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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